얼마 전까지만해도 ‘만화같다’는 말은 유치하거나 허무맹랑 혹은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세상은 변했다. 이제 ‘만화같다’라는 말은 새로운 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젊은 트렌드의 대명사다. 그 기점이 아마 올해라고 봐야 할 것이다.
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만화적 감수성의 확대는 인터넷 콘텐츠의 핵심 코드로 부각되며 전 영상매체로 확산되었다. CF나 뮤직비디오 영화 드라마 그리고 전통적인 회화까지 만화적 감수성의 세례를 받았다. 이처럼 만화는 자신의 외연을 확대하며 문화와 산업을 교차시키고, 진지함과 통속을 뒤섞는 취향의 혁명을 만들어 냈지만 정작 출판만화산업은 깊은 불황을 탈출하는데 실패했다.
2001년 만화의 최대 이슈는 다시 찍어내기다. 흔히 복간 프로젝트라고 이야기하는 인기 만화 다시 찍기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한 시도라는 점과 작품의 부재에 시달리는 허약한 한국 만화 시장의 반증이라는 두가지 측면을 갖고 있다.
인터넷 사이트 딴지일보가 고우영의 ‘삼국지’를 무삭제로 복각한 삼국지 CD가 예상을 깨고 2만부가 넘게 팔리면서 화려한 다시 찍어내기 프로젝트의 시작을 열었다. 이어 바다출판사는 바다어린이 만화를 통해 명랑만화의 걸작들을 찍어냈다.
길창덕의 ‘꺼벙이’, 신문수의 ‘도깨비 감투’, ‘로봇 찌빠’ 윤승운의 ‘두심이 표류기’, 박수동의 ‘5학년 5반 삼총사’와 이정문의 ‘철인 캉타우’가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글논그림밭은 이희재의 ‘간판스타’와 오세영의 ‘부자의 그림일기’, 그리고 박재동의 ‘목 긴 사나이’를, 우석은 박수동의 ‘고인돌 왕국’을 세주문화는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을 새롭게 출판했다.
이들 책은 그동안 만화책이 주로 유통되던 대여점 대신 독자들의 직접 구매를 겨냥했다. 만화를 보고 자란 세대의 추억과 함께 하는 작품들이 선택됐으며, 비교적 고가에 고급스러운 장정으로 서점에서 유통됐다.
만화출판사들도 2001년 출판된 최고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슬램덩크’ 완전판의 성공에 고무되어 예전의 걸작 만화들을 속속 출판했다.순정만화의 경우 80년대에 소개되어 붐을 일으킨 ‘베르사이유의 장미’ ‘올훼스의 창’ ‘여기는 그린우드’ ‘나의 지구를 지켜줘’ ‘스완’ 등의 작품이 출판됐고, 소년만화는 ‘슬램덩크’를 비롯해 ‘드래곤볼’ ‘유유백서’ 등이 출판됐다.
만화 시장의 오랜 불황은 새로운 움직임을 나았다. 만화 대여점이 불황의 원인이라고 생각한 작가와 팬들은 반 대여점 운동을 시작했으며, 디지털을 이용한 제작과 유통이 고민되기 시작했다.
몇 년 전 IT붐과 함께 우후죽순처럼 생긴 인터넷 만화사이트들은 유료화로 수익을 창출했고, 유럽만화의 지속적인 출판은 만화의 다양성을 확대해갔다. 여전히 시장은 어렵지만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2002년 만화에게 필요한 것은 만화적인 것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되는가의 문제다.
박인하(만화평론가·enterani@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