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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프리즘]송호근/꿈을 잃은 젊은세대

입력 | 2001-12-18 18:12:00


10여년 전인가. 중국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맨몸으로 탱크를 막아섰던 청년을 기억할 것이다. 무모하기 짝이 없던 그의 행동과 최근 불붙기 시작한 중국 돌풍 사이에는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유럽을 휩쓸었던 1968년 학생혁명의 열기는 교양층에게 어려웠던 90년대를 돌파하는 정신적 무기를 제공했다. 슈뢰더와 블레어로 대표되는 정치인의 세대교체는 그런 배경에서 가능했을 것이다. 어떤 사회든 혁신을 꾀하려면 반란을 꿈꾸는 젊은 세대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한국에서 젊은층의 기호가 대중매체를 점령한 것은 요 몇 년간의 일이다. TV프로그램은 물론 광고에 이르기까지 젊은이들의 색채가 기승을 부린다. IT산업과 멀티미디어의 마력은 젊은 세대의 생활양식 속에서 증폭한다. 그러니, 한국 청년들의 대중문화가 인근국가로 건너가 한류(韓流)붐을 일으킬 만도 하다. 혹자는 이런 현상에서 젊은층의 저력을 읽기도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기발한 발상은 소비영역에 한정된 것이다. 문화적 탐닉은 열광과 쾌락을 정점으로 소멸할 뿐, 미래설계를 위한 에너지로 승화되지 않는다.

▼모험-도전 않고 보수化▼

이 점을 단언하고 싶지 않지만, 최근 필자가 몸담고 있는 대학의 연구소에서 행한 의식조사 결과를 분석하면서 연구진과 함께 내린 결론이 그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사태 이후 한국사회는 현실주의화, 보수화 경향으로 회귀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데, 놀랍게도 20대가 그것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공과 출세를 위해 연줄과 ‘백’ 을 서슴없이 동원하고, 상관의 잘못을 슬쩍 비껴가는 행태에서 기성 세대와 구별되지 않는다. 성장과 물질을 중시하고 현실적 제약을 자발적으로 수용하는 기성 세대에 저항하는 징후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20대가 젊은 층의 특권인 이상주의와 꿈, 저항과 모험심을 접었다고 생각하면 서글프기 그지 없다.

한국의 젊은 세대는 날개를 접었는가. ‘그렇지 않다’ 고 답할 근거를 찾는 데 실패했다. 사회 행위의 유형에 대한 미국의 사회학자 머튼(R. Merton)의 분류에 따르면, 한국의 젊은 세대는 ‘혁신주의’ 에서 ‘순응주의’ 로 전환한 것이다. 기성 세대가 만들어 놓은 덫에 걸려 있다는 말이다.

해방 이후 역사의 흐름을 바꿔 놓은 중요한 사건들은 모두 젊은 세대의 작품이었다. 권위주의에 대한 한국 젊은 세대의 저항은 세계의 젊은이들을 각성시키기에 충분했으며, 혁명을 향한 열정은 세계화의 시대에 시민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남성중심주의의 단단한 경계를 무너뜨린 것도 어려운 환경에서 페미니즘의 터전을 갈고 닦았던 여성전사들 덕분이며, 어쨌거나 노동자가 이 정도의 대접을 받게 된 것도 70, 80년대 노동운동에 투신했던 젊은 노동자들 때문이다. 이들은 이제 사회를 관리하는 지도층이 되었지만, 당신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 고작 이 정도냐고 탓할 젊은 층이 나타나기를 고대한다.

경제인구학, 또는 정치인구학적 관점에서 젊은 세대의 성향은 국운을 좌우하는 방향타다. 이들에게 경영정신이 충만하다면 경제성장을 기대해도 좋다. 이데올로기의 스펙트럼이 넓다면 20년 뒤에는 이념투쟁이 종식될 것이며, 유유상종을 싫어한다면 지역갈등이 소멸될 것으로 예상해도 좋다. 그러나, 이도 저도 아니다.

▼‘기성세대와의 전쟁’ 선포를▼

최근의 경제위기와 취업난이 젊은 세대의 순응주의를 부추겼을 것이다. 취업경쟁률이 역대 최고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도전과 혁신에의 꿈은 허망한 것으로 변한다. 이런 관점에서 청년실업의 방치는 일종의 죄악이다. 그러나, 역으로, 이 정도의 역경은 언제나 존재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기성 세대의 잘못이 많고 역량이 부족할수록 젊은 세대의 도전이 거셌던 것이 한국의 역사였다.

그렇다면, 이제 대전환의 시도는 누구에게 기대할 것인가. 아시아 국가로 수출되는 문화적 탐닉과 열광의 기류가 세대적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자의 자괴감, 또는 순응주의로 돌아서는 자의 피로연처럼 느껴진다면 한국의 21세기는 실종될 지도 모른다. 니체의 권고처럼, 천 개의 눈으로 사물을 녹이는 힘을 보여달라. 단단한 껍질로 무장한 기성 세대에 세대전을 선포해주기를 바란다.

송호근(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