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출판사와 잡지사를 운영하는 데이비드 에임스(톰 크루즈)는 타고난 매력과 든든한 재력을 바탕으로 많은 여성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데이비드는 줄리(카메론 디아즈)를 섹스 파트너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지만 줄리는 그를 사랑하고 있다. 데이비드는 자신의 생일파티에서 만난 친구의 애인 소피아(페넬로페 크루즈)에게 첫눈에 사랑을 느낀다. 질투와 분노에 사로잡힌 줄리는 이런 데이비드를 미행하게 되고 급기야 자신의 차에 태워 동반 자살을 시도한다. 차가 크게 파손되는 사고 후 줄리는 생명을 잃고, 간신히 목숨을 건진 데이비드는 흉측하게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에 절망한다.
이렇게 시작되는 영화 ‘바닐라 스카이’는 1997년 스페인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가 연출했던 영화 ‘오픈 유어 아이즈’를 토대로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국내에선 흥행에 성공하지 못해 기억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겠지만, 이 영화로 당시 스물다섯 살의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는 세계 영화계에 자신의 이름을 뚜렷이 각인시켰고 선댄스, 베를린 등 유명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선댄스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본 할리우드의 톱스타 톰 크루즈가 직접 판권을 사들이고 제작에 주연까지 맡으면서, 두세 번은 보아야 이해될 정도로 복잡하기 그지없던 영화는 비교적 접근하기 쉽고 스타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흥미진진한 로맨스 스릴러물로 다시 태어났다.
▼로맨스+스릴러 흥미진진
사고 후 소피아를 비롯한 주위 사람 모두에게 외면당하며 악몽의 세월을 보내던 데이비드. 술에 취해 길거리에 쓰러져 잠든 다음날부터 인생의 수레바퀴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굴러가기 시작한다. 소피아와의 사이에 진짜 사랑이 싹트고, 새로운 의료기술로 얼굴까지 완벽하게 고쳐 행복한 세월을 보내던 데이비드의 눈에 소피아의 모습이 죽은 줄리로 보이기 시작하고 그의 얼굴은 다시 흉측하게 일그러진다. 결국 데이비드는 자신의 현실이 진실이 아니라 생명연장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가상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를 찍으면서 사랑에 빠져, 실제 연인 사이로 발전해 할리우드의 뉴스 초점이 되고 있는 톰 크루즈와 페넬로페 크루즈의 사랑 행로가 영화의 중심이지만 여기에 심리 스릴러와 SF영화의 공식들이 치밀하게 중첩되어 영화는 관례적인 멜로드라마의 형식을 훌쩍 뛰어넘는다. 관객들을 악몽의 바다로 내몰았던 아메나바르의 오리지널 영화보다는 확실히 강도가 덜하지만, ‘바닐라 스카이’를 보는 관객들 역시 영화를 보는 동안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거짓일까라는 의문을 내내 품게 된다.
지옥 같은 현실을 견디지 못해 가상현실의 행복 속으로 빠져든 데이비드. 그러나 낙원과 행복이 주어진다고 아무런 의심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꿈과 현실, 가상과 실재를 넘나드는 이 영화는 우리에게 눈을 뜨고 진짜 현실이 무엇인지를 보라고 말한다. 그것이 혼돈의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 신을진 주간동아기자 > happye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