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東京)에서는 보통 6개의 종합일간지를 읽을 수 있다. 그런데 23일 아키히토(明仁) 천황의 ‘일본 천황가와 백제와의 혈연관계’에 대한 언급을 보도한 신문은 2개밖에 없었다.
물론 나머지 신문들도 천황의 다른 발언은 자세히 보도했다. 월드컵을 통해 한일간의 우호증진을 희망한다는 발언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나 유독 ‘혈연관계’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침묵했다.
뉴스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개별 신문의 몫이다. 그러나 아키히토 천황의 발언은 일본 사회에서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사안이다. 금기시돼 있어 누구든 공개적으로 언급할 수 없었을 뿐이다. 그런 금기를 천황 자신이 깼다. 무엇보다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천황 자신이 만들어 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신문이 이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은 것은 왜일까.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아주 먼 옛날 일본이 한반도로부터 문화와 문물을 전수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황실의 핏줄에 대해서는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한국의 역사교과서를 분석한 어느 일본 학자는 “옛날 한국은 늘 일본에 뭔가를 ‘가르쳐 줬다’ ‘전해 줬다’는 등 ‘생색내기 사관’으로 가득 차 있다”고 비판했다.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일본 언론의 보도 태도를 보면서 ‘생색내기 사관’도 문제지만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콤플렉스 사관’도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키히토 천황이 백제와의 혈연관계를 언급한 뜻은 분명해 보인다. 월드컵을 계기로 앞으로는 양국이 예전처럼 친한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뜻일 것이다.
일본의 상당수 언론이 이런 천황의 뜻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것은 유감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한일 우호관계의 회복을 주장하면서 말이다.
심규선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