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스포츠 화제]“태극권 싫으면 회사 그만둬라”

입력 | 2001-12-25 18:08:00


21일 영하의 날씨가 옷깃을 저미게 하는 오전 8시30분, 한국의 ‘벤처 1번지’ 서울 테헤란로의 한 벤처기업 빌딩의 옥상.

연회색 트레이닝복을 차려입은 60명에 가까운 선남선녀들이 푸른 인조잔디 위에서 열심히 그러나 천천히 팔과 다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가끔 중국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에서 본 태극권. 베이징의 공원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모여 움직이는 듯 마는 듯 하는 그 것 말이다.

60명의 선남선녀는 경영관리시스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전문벤처회사 ‘영림원소프트랩’ 직원들.

영림원소프트랩 직원들은 지난해 11월부터 1년넘게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아침마다 태극권을 수련하고 있다.

전직원이 태극권을 배우는 데는 이 회사 CEO 권영범씨(47)의 고집 때문.

“태극권이 싫으면 나하고 최소한의 생각도 공유가 안되니 같이 일 할 수 없다고 했지요.”

권씨의 거침 없는 말이다.

그러나 흐르는 물처럼 끊임없이 동작을 이어가는 직원들의 얼굴은 사사로운 것들을 모두 떨쳐버린 도인(?)의 표정과 비슷하다.

전자공학도인 권씨는 이른바 국내벤처 1세대. 국내 처음 스포츠경기정보시스템을 개발해 88올림픽당시 전산계장으로 실무를 지휘했다.그 이후엔 최초의 성공한 벤처모델인 큐닉스컴퓨터에서 개발을 담당했다. 잠자는 시간 이외엔 업무에 매달리는 한마디로 ‘일벌레’.

“92년 망년회 때였어요. 18개월동안 잠안자고 만든 소프트웨어가 막 완성된 직후였는데 주무부장으로 후배 과장 5명을 모아놓고 더 이상 힘들어 못하겠다, 전산계를 떠나겠다고 공언했죠.” 그런데 업계를 떠나겠다던 그는 불과 1개월 뒤에 예전보다 더 엄청난 열정으로 영림원을 창업했다.

“누가 국선도를 권하더라구요. 국선도 수련을 하니까, 머리가 맑아지면서 잃어버렸던 기를 되찾았죠.”

자신은 국선도를 배우며 직원들에겐 왜 태극권을 배우라는 걸까? “국선도는 앉아서도 하고 엎드리기도 해야돼 공간이 따로 필요하지만 태극권은 서서하고 아무런 준비없어도 할 수 있으니까 이거다 싶었죠.”

처음엔 강요 하지 않고 희망자에게 인사메리트를 주는 식으로 했는데 직원들이 따라주지 않더란다. 그래서 올 9월부터는 고집을 부려 강제로 시킨다. 신입사원의 경우도 3개월안에 태극권의 기본인 24식을 마스터해야 정식사원 발령을 낸다.

권씨가 태극권을 강요하는 이유는 뭘까? “이 직종은 밥먹을 시간이나 잠자는 것도 잊고 한번 앉았다하면 며칠이고 머리쓰는 일이에요, 머리를 잘 쓰려면 건강이 뒷받침돼야하는데 태극권만한게 없더라구요.”

권씨의 강요에 반발한 직원은 없었을까?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딱 한명요, 그친구와 오랫동안 얘기를 했는데 죽어도 싫다고 해서 그럼 아쉽지만 같이 일할 수 없다고 했지요.”

태극권 수련덕분일까. 회사일도 잘된다. 전사적자원관리(ERP) 패키지 솔루션인 ‘K시스템 시리즈’를 내놓아 올 35억원의 매출을 달성했고 내년엔 예상매출을 3배로 잡고 있다.

j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