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음이 들렸어요. 다시 눈을 떴을 땐 병원이었어요.”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 대대적인 공습을 시작한 10월7일. 잘랄라바드에서 아이스크림 행상을 하는 아프간 소년 아사둘라(16)는 파키스탄 페샤와르의 한 병원에서 깨어난 뒤 이렇게 말했다. 아사둘라군은 양 다리와 손가락 2개를 잃었다. 아프간 공습 첫 민간인 부상자였다.
이날 오후 8시경 잘랄라바드 공항 부근에 있는 집으로 걸어가던 모하메드 라자는 크루즈 미사일의 파편이 목을 관통하는 바람에 척추가 손상돼 평생 누워지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연재기사▼
- ①英축구대표팀 에릭손감독 상징성
- ②인간 존중하는 日기업문화
- ③농구황제 조던의 복귀 성공학
- ④NYT의 반성 ‘못다쓴 1년’
- ⑤테러전에 희생된 아프간 민간인
- ⑥지구촌 곳곳 ‘죽음의 바이러스’
“일요일 하늘에서 떨어진 미군 폭탄 하나가 카불의 한 진흙집을 박살냈다. 아버지와 함께 아침을 먹던 아이들 7명은 산산조각이 났다.”(10월29일자 인도 일간지 ‘타임스 오프 인디아’)
미국의 아프간 개전 뒤 매일 적게는 십여명에서 많게는 200명 이상의 아프간 민간인이 희생됐지만 이에 대한 보도는 미군과 반 텔레반군의 잇단 승전보에 밀려났다. 아프간 전쟁이 사실상 종료된 지금 어느 언론도 아프간 민간인이 얼마나 희생됐는지 보도하지 못하고 있다.
아프간 희생자를 추적한 글로는 미국 뉴햄프셔대 경제학과의 마크 W 헤럴드 교수가 최근 인터넷에 게재한 논문이 거의 유일하다. 그의 추산에 따르면 아프간 민간인 사망자수는 3767명으로 9·11 연쇄 테러의 미국 희생자 3251명보다 많다. 추산 원칙은 서구 주류 언론의 보도 내용을 배제하고 기타 언론에서 2군데 이상이 같은 수치를 제시한 경우와 피해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했을 경우에 한해 사망자수를 신뢰있게 간주한다는 것.
헤럴드 교수가 주류 언론을 불신하는 이유는 그들이 민간인 희생 사례를 거의 다루지 않은 것은 물론 설사 다뤘더라도 ‘많은’ 또는 ‘일부’ ‘십여명’ 등의 막연한 수식어를 사용하거나 ‘탈레반 측이 이렇게 주장했지만 현재로서는 확인이 불가능하다’며 수치의 신뢰성을 떨어뜨렸기 때문이라는 것.
아프간 민간인 참상은 미 정부가 은폐한 측면도 강하다. 피해상황을 집계하지도 않았고 현장에 대한 접근도 통제했다. 민간인 참상 보도로 전쟁 지지도가 떨어질 것을 우려한 탓이다.
외신 보도를 종합해보면 미군의 폭탄은 민간인 마을에도, 병원에도, 이슬람 사원에도, 국제적십자 창고에도 떨어졌다. 헤럴드 교수는 미군이 탈레반의 대공무기로부터 조종사와 폭격기를 보호하기 위해 6300m 이상의 상공에서 공습했기 때문에 정확도가 떨어져 민간인 피해가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정작 전쟁이 끝났다고 하지만 아프간 주민들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민간 지뢰제거 단체에 따르면 아프간에 떨어진 미사일과 폭탄의 10∼30%가 불발탄이다. 주민들은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자신과 무관한 전쟁으로 목숨을 잃거나 하루하루 사선을 넘나드는 아프간인의 희생을 과연 어떤 명분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일까. 테러와의 전쟁이?
이 해가 가기 전 던지고 싶은 질문이었다.
kim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