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곰과 개구리가 잠에 취해 있는 계절. 그러나 세상을 놀라게 하는 ‘탁구신동’은 이번 겨울 비로소 오랜 동면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동안 등록 문제로 갈등의 한가운데 서 있던 삼성생명의 유승민 선수(19). 지난 12월19일 제55회 전국남녀종합탁구선수권대회에서 그가 남자단체전과 단·복식 등 3관왕에 오르는 모습을 지켜본 탁구계 관계자들은 기쁨과 함께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지난 5월까지만 해도 유승민은 삼성생명과 제주삼다수의 이중등록 파문에 휩싸여 심리적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구슬땀을 흘리며 라켓을 아무리 열심히 휘둘러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결국 그는 제43회 오사카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한 채 ‘한국 남자탁구의 간판은 역시 김택수’라는 세간의 인식을 다시 한번 확인시키고(?)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다.
서울에 돌아와서도 마음고생은 끊이지 않았다. 제주삼다수가 5억원의 중재안을 내놓은 대한탁구협회를 상대로 ‘중재결정 효력정지 가처분신청과 지명권 존재 확인과 손해배상소송’을 지난 8월29일 제주지방법원에 내며 ‘탁구협회와의 전쟁’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때가 유승민이 이를 악문 시점. 시련을 이겨낼 방법은 오로지 피나는 연습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길밖에 없다고 다짐했다는 것. 취약점으로 지적받던 블로킹을 다듬기 위해 하루 4시간 가까운 개인훈련을 자청했다. 연습 때는 호랑이처럼 엄하지만 체육관을 벗어나면 아버지처럼 자애로운 강문수 감독의 집중 조련은 그의 노력에 날개를 달아줬다.
그 결과가 조금씩 나타난 것이 지난달 열린 스웨덴오픈대회. 준우승에 그치긴 했지만 세계랭킹 1위인 중국의 왕리친과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 접전을 펼치며 세계 탁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러다 전북 익산에서 열린 이번 선수권대회에서 꽃을 활짝 피운 것이다. 단식 결승에서 김택수를 만나 특유의 강드라이브로 맹공을 펼치며 4대 1로 아무도 예상치 못한 완승을 이끌어냈다. 이철승(29)과 호흡을 맞춘 복식에서도 기세가 이어져 우승을 엮어냈다. 모두 기다린 ‘한국탁구의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유승민은 경기가 끝난 뒤 “최근 (김)택수형에게 4연패해 이번에는 이기고 말겠다는 각오로 임했다”며 “내년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기대에 부응하겠다”고 다부진 우승 소감을 밝혔다.
스웨덴오픈과 이번 대회 결과만 놓고 유승민이 한국탁구의 미래를 전부 책임질 것처럼 단언하고 싶지는 않다. 앞으로 그를 향한 국내외의 견제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러나 ‘강철은 두드릴수록 강해진다’고 했던가. 호된 시련을 겪고 일어난 유승민에게서 밝은 내일이 느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