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새 아침이 밝았다. 정권적 차원의 온갖 부정과 부패, 그리고 위선으로 국민을 실망시키고 분노케 했던 신사년(辛巳年)을 보내고 임오년(壬午年)을 맞이하여, 그래도 우리는 다시 한 번 새로운 희망과 기대를 국민 모두와 함께 나누고자 한다. 해방직후의 혼란, 건국직후의 전쟁, 잦았던 정변, 그리고 국제사회로부터 외풍과 격랑을 겪으면서도 국민 모두의 땀과 희생으로 일으켜 세운 이 나라가 불법과 불의, 갈등과 무질서의 늪속에서 이대로 허우적거리고 있어서는 안 되겠기에 우리의 마음가짐은 비장하기조차 하다.
올해는 겨레와 나라의 장래와 관련해 매우 중대한 해이다. 세계 앞에 대한민국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계기가 될 월드컵과 아시아경기를 성공적으로 치러내는 일,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선언한 ‘전쟁의 해’에 국제사회에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적절히 확보하는 일, 지방선거를 성숙된 모습으로 치러내는 일, 경제를 활성화시켜 국민의 살림살이를 넉넉하게 만들어주는 일, 그리고 남북관계의 실질적 개선과 발전을 이룩하는 일 등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들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16대 대통령선거를 공명정대하게 치러내는 일이다. 이 대선을 치러내는 과정과 그 결과야말로 21세기 첫 10년대 한국의 명운을 좌우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잘못 가졌거나 잘못 뽑았기에 국운이 비색해지고 국론이 분열됨으로써 마침내 국민 모두가 고생하게 된 쓰라린 경험을 하지 않았던가.
▼정권핵심 개입된 비리 만연▼
그렇다면 역사적 분기점이 될 수 있는 올해의 벽두부터 시작해서 가능한 한 빠르게 매듭지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입장에 따라 해답은 여러 갈래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권부패의 대대적 척결, 특히 정권핵심부의 철저한 수술이 정답이라고 판단한다. 이것 없이는 국민 대다수의 불신과 냉소를 씻어줄 수 없고, 국민 대다수의 불신과 냉소가 씻어지지 않고서는 정부의 권위가 계속해서 실추해 어떤 일도 제대로 결실을 보기 어려우며, 그렇게 되면 국민 모두가 의욕을 잃고 나라 전체가 활기를 잃게 될 것으로 우려하기 때문이다.
자민련과의 공동정권 시대를 포함해, 이른바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은 정권핵심부의 요인들이 개입된 부정부패 또는 비리의 만연이다. 집권당의 국회의원들을 비롯해, 국가정보원 검찰청 경찰청 등 사정의 중추기관 요인들은 물론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고위인사들까지, 불법과 악성로비, 그리고 조작의 연쇄에 깊이 연루되어 있는 이 현실은 결국 부정부패가 정권적 차원에서 저질러졌다는 믿음을 국민 대다수에게 심어준다.
게다가 의혹이 제기됐다 하면 대통령의 가족들, 그리고 이른바 대통령만들기 공신들의 이름이 따라 다니는 이 현실은 정권 핵심부에 대한 믿음을 땅에 떨어뜨려 놓았다. 의혹의 초점이 되고 있는 한 ‘하수인’의 해외도피와 그 사실의 1개월 뒤 ‘발표’는 그 ‘하수인’의 배후와 ‘몸통’이 어떤 세력인가를 짐작케 한다.
그렇기에 정권지도부의 겉으로는 아름다우나 실제로는 거짓말이나 다름없는 언행들에서 위선을 느끼게 된다. 국가중추기관들의 명예가 이렇게 더럽혀지고 위신이 이렇게 떨어진 일은 건국이래 드물다고 우리는 판단한다.
▼자기합리화 급급한 정권▼
국가적 현실이 이처럼 심각한데도, 정권지도부는 자신들이 태평성대를 이룬 듯한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시국의 엄중함을 지적하면, 언론 탓, 야당 탓으로 그 책임을 전가하고 자기합리화나 하려 한다. 대권주자라는 거물급 정치인들조차 세몰이에 빠져 구시대적 여론조작과 상대방 헐뜯기에 바쁘다. 경선이든 대선이든 선거일이 가까워오면 가까워올수록 일부 후보들 사이에서는 지역갈등부추기기와 돈뿌리기 등 망국적 작태가 극심해질 것이다. 이처럼 참담한 현실에서 어떻게 경제를 활성화하고 어떻게 사회기강을 바로 세우며, 어떻게 도약과 발전, 그리고 국민화합과 남북화해를 실현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올해의 으뜸가는 국가적 과제는 정권부패 척결작업이라고 우리는 주장한다. 정권핵심부에서 저질러진 부정과 부패를 철저히 파헤쳐, 부당하게 영향을 행사한 자들을 포함한 모든 범법자들을 의법처단해야 한다. 혐의가 짙은 정치인들과 전현직 고위관리들의 사전 해외도피도 막아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청정한 사회기풍을 새롭게 불러일으켜야 국민들이 좌절감에서 벗어나 희망을 갖고 저력을 발휘할 수 있다. ‘희망의 정치’는 거기서 시작한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임기마무리를 그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나라를 바로 세우고 국민을 살리는 구국운동의 출발이다. 동아일보는 시시비비와 불편부당의 정론으로써 이 구국적 과제의 진행상황을 날카롭게 주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