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마다 맞는 대선의 해가 또 다시 돌아왔다. 대선의 해엔 정치권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이 출렁거린다. 역으로 온갖 요인이 대선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미국이나 일본의 경제상황과 같은 나라 밖의 요인도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3김 시대’의 사실상 종언을 의미하는 올해 대선은 더더욱 수많은 변수들에 의해 판세가 천변만화할 가능성이 있다. 동아일보는 각계 전문가 5인의 집중 인터뷰를 기초로 올해 대선 구도와 판세를 좌우할 6대 변수를 점검해 봤다. 그러나 아직 1년 가까이 남은 대선까지는 예측키 어려운 변수의 돌출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
▼지역주의-영호남 民心 아직 유동적▼
‘3김’ 가운데 최소한 두 사람의 정치무대 퇴장이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올해 대선 역시 지역주의가 다른 변수를 압도하는 영향력을 가질 것이라는 데 전문가들의 견해는 일치하고 있다.
주요 관전 포인트의 하나는 영남지역의 결집력. 현재 이 지역에 팽배해 있는 ‘반(反) DJ’ 정서는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로 나타나고 있으나, 정작 이 총재의 대선 경쟁자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여당 후보가 누가 되더라도 영남지역의 뿌리깊은 반 DJ 정서는 거의 그대로 여당 후보에게 전이될 것이며, 영남후보가 나오더라도 ‘이인제(李仁濟) 학습효과’ 때문에 이회창 후보에게 표가 몰릴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으나 현지 언론들의 여론조사 결과는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영남후보가 나올 경우 찍겠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올해 대선은 직선제가 도입된 87년 이후 처음으로 ‘호남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선거가 치러질 가능성이 큰 만큼 호남 민심도 유동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막상 대선에 접어들면 영남의 반 DJ 정서에 대응하는 ‘반 이회창’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비호남 여당 후보’라도 호남 유권자들이 표를 몰아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결국 한 쪽의 결속력 강화가 다른 쪽의 표 결집을 촉발하는 과거의 재판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영호남 지역대결이 재연될 경우엔 충청권 민심이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이 지역 민심은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총재의 거취가 결정되고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확정된 뒤에야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된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경제상황 -경기 불투명…표심 어디로▼
최근 동아일보 자매지인 신동아와 주간동아의 공동여론조사에서도 경제상황이 올해 대선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답변이 48.7%에 달했다. 또한 본보 기자들이 자문한 전문가 5명도 한결같이 경제상황을 올해 대선의 주요 변수로 꼽았다.
집권 마지막 해의 경제상황은 그 정권의 ‘성적표’와 같은 것이어서 대선 유권자들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이 적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 97년 대선에서도 당시 여당 후보의 결정적 패인 중 하나가 대선 직전에 터진 ‘환란(換亂)’이었다.
지난해 말 ‘한국 증시가 내년 1년 동안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가장 높은 상승세를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는 미국 JP모건사의 투자분석이 언론에 보도되자 민주당 관계자들이 희색을 감추지 못한 것도 대선을 의식해서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주가가 800선만 유지한다면 대선에서 천군만마를 얻는 것과 다름없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지난해 말 민주당이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허용하는 쪽으로 기금관리기본법을 개정하려고 했으나 한나라당이 기를 쓰고 막은 것도 같은 맥락.
그러나 한국 경제가 ‘저점을 통과했다’는 희망적 관측이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엔화의 평가절하 가능성과 미국 경기의 회복전망 불투명 등 국제적인 요인을 감안할 때 올해 경제 전망을 낙관하기는 어렵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많다.
또한 경기가 회복된다고 하더라도 일반 국민이 체감할 수 있을 정도에 이를지는 더더욱 미지수다. 지방선거와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예상되는 극한적인 정쟁과 집단민원, 그로 인한 사회 불안과 혼란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윤종구기자jkmas@donga.com
▼이회창 대세론-부동의 1위-거품 논란▼
대선을 1년 가까이 앞둔 시점에서 야당의 유력한 대선주자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이회창 대세론’은 일단 한나라당의 집권 가능성에 대한 기대치를 높여줌으로써 당내 비주류의 돌풍을 잠재우는 방패막이가 되고 있다. 이 총재로의 ‘표 쏠림’ 현상을 가속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나아가 이회창 대세론이 더욱 굳어질 경우 이 총재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인 영남후보의 출현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 긴 시간이 남아 있고, 변수도 많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너무 일찍 형성된 대세론은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반 DJ’ 정서를 희석시킬 수 있는 여당의 대선후보가 나오게 되면 이회창 대세론의 거품이 급격히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정계 개편을 통한 제3후보의 출현 등 돌출 변수도 이회창 대세론을 흔들 수 있는 복병이 될 수 있다.
정연욱기자jywill@donga.com
▼월드컵-지방선거:성적따라 울고 웃고…▼
대선 6개월여 전에 열리는 월드컵 대회에서 한국팀이 좋은 성적을 내거나 이 대회를 계기로 경제가 살아날 경우엔 여당 후보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그럴 경우 무소속 정몽준(鄭夢準) 의원이 ‘월드컵 스타’로 부상하면서 어떤 형태로든 대선전에 뛰어들 것이라는 관측도 끊이지 않고 있다.
반면 한국팀 성적이 나쁘거나 월드컵 특수 효과가 미미할 경우엔 여당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월드컵과 비슷한 기간에 치러지는 지방선거는 대선에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는 쪽이 대선에서도 승리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분석. 즉 지방선거와 대선의 시간적 간격이 6개월밖에 되지 않아 ‘한 번은 이쪽, 한 번은 저 쪽’ 식의 ‘시계추 투표’ 성향이 재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든 야든 지방선거에서 패배할 경우엔 선거책임론이나 후보교체론 등이 불거져 자중지란(自中之亂)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정용관기자yongari@donga.com
▼대선 대진표…'제3후보' 또 나올까▼
한나라당과 민주당 대선후보의 득표력을 당락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까지 잠식할 수 있는 ‘제3의 정치세력’ 또는 ‘제3후보’가 나올 것이냐의 여부가 관심사다.
우선 민주당의 경우 당내 정치일정을 둘러싸고 분란을 겪어온 이인제 대 반(反)이인제 진영이 대선후보 경선 이후 분열될 경우 제3의 정치세력 출현을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
한나라당도 김덕룡(金德龍) 의원이나 이부영(李富榮) 부총재와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한 박근혜(朴槿惠) 부총재 등이 불공정 경선 등을 이유로 이회창 총재와 다른 길을 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여야의 이탈세력이 모여 제3의 정치세력을 결성하고 독자적인 후보를 내세운다면, 대선 대진표는 전혀 다르게 짜일 가능성이 있다. 이는 민주당보다는 현재 선두를 유지하고 있는 한나라당쪽이 더욱 꺼리는 구도다.
1월15일 대권도전을 공식 선언할 JP가 끝까지 ‘완주’할 것인지 여부도 대선 판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박성원기자swpark@donga.com
▼민주당 행로-분란땐 정계개편 태풍▼
민주당 총재직을 사퇴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일정 시점에 공정한 선거관리를 이유로 당적마저 버릴 가능성이 크다. 그럴 경우 민주당은 당내 갈등을 조정하고 분란을 수습할 수 있는 구심점이 사라지게 된다.
그런 가운데 동교동계 구파와 이인제 상임고문을 중심으로 한 당권파 연합과 한화갑(韓和甲) 김근태(金槿泰) 정동영(鄭東泳) 상임고문을 중심으로 한 쇄신연대의 힘 겨루기는 더욱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양측의 관계가 경선을 전후해서 적대적인 수준으로까지 악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가장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역시 경선 차점자의 불복(不服) 가능성. 지금은 대선 예비주자들이 모두 “승복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경선 과정에서 서로 간의 감정의 골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깊어질 경우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다.
민주당의 분열은 정치권에 연쇄반응을 불러일으킬 공산이 크다. 특히 한나라당 비주류 인사들이 동요할 것이다.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