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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전망]'침묵의 터널' 에 갇힌 남북대화

입력 | 2001-12-31 16:42:00



《올해 남북관계의 중심 과제는 대화의 재개이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및 남북정상회담 정례화가 기정 사실화되는 분위기였으나 지금은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재작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약속했고 이후 남북장관급회담 등을 통해 발표됐던 무수한 합의 사항 중 하나라도 제대로 마무리될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을 정도다. 그나마 남북대화가 재개돼야 뭐라도 추진할 수 있는데 대화 재개 여부마저 불투명하다. 국제 정세나 한반도 주변 환경 등 외적 여건도 썩 좋은 편이 아니다.》

올해 남북관계 전망은 대체로 흐린 편이다. 지난해 11월 6차 남북장관급회담이 결렬된 이후 남북 간에는 이렇다 할 접촉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재작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첫 당국간 회담 결렬에 따른 충격이 쉽게 가시지 않고 있어, 남북 모두 대화의 첫 마디를 떼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다.

남북관계가 답보상태에서 쉬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국제적인 환경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출범과 함께 시작된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과 미국 9·11 테러사태에 따른 국제정세의 급변이라는 외적 요소가 남북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사실.

올해 남북관계에 영향을 미칠 또 하나의 요소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회갑(2월16일) 행사를 시작으로 올 상반기 내내 북한의 대규모 정치행사가 이어진다는 것. 이 때문에 북한이 남북대화에 속도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지만 오히려 행사 자원 마련 차원에서 남북대화의 필요성을 느낄 것이라는 전망도 없지 않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대북지원 방향에 따라 북한의 대응도 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북한을 움직여온 동인(動因)이 대북지원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북한은 금강산관광을 통한 외화획득이 어려울 경우 남북대화에 적극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고 북한이 ‘공화국 최대과제’라며 요청하고 있는 전력지원 문제 해결을 정부가 선뜻 약속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섣불리 대북지원을 약속했다가는 야당의 집중공세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 문제 또한 국내정치에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거듭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해 온 점에 비춰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임기 내 답방은 이미 물 건너 갔다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나, 북한이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 카드를 엉뚱한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동복(李東馥) 명지대 객원교수는 “김정일 위원장 답방은 성사가 어렵겠지만 북한이 ‘답방 약속은 지키겠다. 그러나 서울을 갈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니 환경을 조성하라’고 나올 수 있다”며 “이 문제를 둘러싸고 남한 내에서 빚어질 갈등과 혼란을 북한측이 왜 노리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남북대화의 실질적인 진전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지난해 말 조평통 대변인 담화를 통해 ‘남북간 미이행된 합의사항 준수’ 의사를 밝혔다는 점에서 남북관계 전망은 그리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 내부 사정. 즉 대선과 지방선거, 월드컵대회와 아시아경기 등 국내적으로도 굵직굵직한 행사가 많다는 점에서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김 대통령으로서는 그동안 남북 간에 공동으로 추진한 경의선 연결,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사업 중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마무리를 하는 게 급선무라는 지적이 많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