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으로는 자신의 본 모습을 깨치도록 철저히 수행하고, 밖으로는 혼신의 힘을 다해 남을 도와주는 것이 수행자의 본분이다.”
지난해 12월31일 열반한 조계종 혜암(慧菴) 종정은 엄격하고 청정한 수행생활과 이타(利他)정신으로 혼탁한 이 시대 사부대중(四部大衆)의 귀감이 돼 왔다. 1946년 출가 이후 50년이 넘도록 하루 한끼의 식사(일일일식·一日一食)와 눕지 않고 수행하는 장좌불와(長坐不臥) 등 치열한 수행은 물론 불교계의 큰스님으로서 종단의 이전투구를 바로잡아 한국 불교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일생을 헌신했다.
해인사에서 인곡(麟谷) 스님을 은사로 출가할 때 인곡 스님이 “어디서 왔느냐”고 묻자 “아악” 하며 일갈로 답하고 “고향이 어디냐”고 할 때는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내리쳤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48년 이후 혜암은 해인총림 선원, 조계종 총림 선원, 통도사 극락암 호국선원, 범어사 금어선원 등의 선원에서 수행하면서 당대 최고의 선승들과 함께 선 수행에 매진했다. 수행 시절 강원 오대산의 버려진 한 암자에서 한겨울에 제자와 단 둘이 불도 때지 않고 밥도 먹지 않고 물과 잣나무 잎가루만 먹으면서 4개월 이상을 지내는 등 혜암은 한눈 팔지 않고 용맹정진에 매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77년 이후엔 해인총림에서 대중들과 함께 총림의 발전과 대중들의 용맹정진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나이가 들어서도 감기에 걸렸다 싶으면 엄동설한에 아랑곳없이 옷을 모두 벗고 찬 계곡물로 뛰어드는 등 혜암의 수행은 추호도 흔들리지 않았다. 평생 엄격한 수행으로 일관한 삶이었다.
혜암은 93년 11월 해인사 방장 성철(性徹) 큰스님이 열반에 들자 뒤를 이어 해인총림 방장에 올랐다. 94년과 98년 조계종 분규 때에는 원로회의 의장으로서 불교의 바른 법을 수호하는 추상 같은 의지로 종단을 지켜냈고 그 후 99년 5월 조계종을 대표하는 종단 최고 어른의 자리인 10대 종정에 올랐다. 출가 후 그 흔한 주지자리 한 번 맡지 않았고 열반 직전까지 해인사 원당암 미소굴(微笑窟)에서 수행에만 몰두해 온 이 시대의 대표적 선승이다.
혜암 종정은 지난달 26일 “대립과 투쟁에 헤매는 어리석은 이들이여, 허망한 탐욕을 허공 밖에 버리고 청정한 본래 마음으로 돌아가 영원히 광명세계에 살지어다”라는 마지막 신년 법어를 발표했다.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