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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 휴스 칼럼]가장 즐거운 '중독물'

입력 | 2002-01-02 17:19:00

랍 휴스


지난해 9월11일로 이 세상 모든 것은 변해버렸다.

우리를 웃기고 울리는 스포츠의 감흥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미국인들이 별 관심을 두지 않는 축구조차 뉴욕 세계무역센터에 ‘비행기가 잇달아 달려든’ 충격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올 월드컵축구대회가 아무리 잔치 분위기를 연출할지라도 하늘과 지상에서의 각종 규제는 대회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삼엄한 안전 대책은 9.11 참사로 우리가 치를 댓가의 하나다.

그간 우리가 스포츠를 온갖 문제로부터의 도피처로 보았다면 이제는 그 생각을 버려야 한다. 스포츠의 순수함에 대한 희망 역시 접어야 한다.

경기장내 공포와 관련해서도 우리는 지난 한 해 너무도 ‘나사가 풀려’ 있었다. 지난해 봄 아프리카의 세 경기장에서는 30일 동안에 183명이 목숨을 잃었다. 충분히 예측가능했고 피할 수 있었던 참극이었다.

우리는 한때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을 이제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9.11 테러 사태가 벌어졌을 때 유럽 전역에는 30만명의 축구팬이 흩어져 있었다. 그날 밤은 챔피언스리그가 열리는 날이었고 올 여름 우리가 한국에서 볼 기라성같은 선수들이 출전 채비를 하고 있었다.

유럽축구연맹(UEFA)은 경기 개최를 두고 고민했지만 결국 경기를 열기로 했다. 테러에 둔감했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축구팬을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위험하지 않다고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다음날은 경기가 연기됐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 도처가 슬픔에 잠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축구계는 지난해 4월11일과 5월9일 사이에 요하네스버그와 콩고, 아크라에서 질식하거나 밟혀 숨진 아프리카인들에게 뉴욕 시민들에게 만큼의 애도를 표했던가?

이 비극들은 우리가 1989년 잉글랜드에서 벌어진 힐스버러 비극에서 하나도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수용 인원을 넘어 팬이 가득 들어찬 경기장 한 구역에서 96명이 목숨을 잃었다. 엉성한 경기 준비와 무능한 경찰, 그리고 내가 여러분의 멋진 월드컵 경기장에서 결코 보지 않길 원하는 철제 펜스 때문이었다.

관중석과 그라운드를 분리시키기위해 설치된 그 펜스는 수많은 팬의 목숨을 앗아갔다. 경기를 주관하는 돈 많은 FIFA는 그날 벌어진 참사의 교훈을 전세계 안전 책임자들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대신 FIFA는 영웅을 창출하기 위한 축제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해 전세계 대표팀 감독들이 루이스 피구를 ‘올해의 선수’로 뽑았던 일련의 과정이 대표적이다.

9.11 참사 며칠후 엄청난 갑부 야구 선수인 마이크 피아자가 비극의 뉴욕 현장을 방문했다. 그는 “나는 두 아들을 잃은 한 여인을 만났는데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그녀의 말만 들었다. 그녀가 손자들이 있다고 해 나는 그 아이들을 위해 야구 모자를 주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피아자는 당시처럼 무력감을 느낀적이 없었다. 그는 몇걸음을 떼다 다시 그 현장으로 돌아갔다. 비탄에 빠진 사람들은 뭔가 말을 하고 싶었고 피아자같은 스타와 아픔을 나누고 싶어했다.

며칠후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 시장이 시민들에게 일상으로 돌아갈 것을 호소하면서 스포츠 경기가 재개됐다. 미국 공군이 전투를 위해 떠난 동안 나머지 시민들은 경기장으로 돌아갔다. 심지어 노쇠해가는 미국프로농구 우상 마이클 조던도 농구공을 다시 집어들었다. 줄리아니 시장은 “다시 열린 경기들이 유일하게 내 의욕을 되살렸다”고 말했다.

우리는 새해에 스포츠가 가장 즐거운 ‘중독물’로서 그 가치를 되찾으리라고 기대한다. 솔트레이크시티에서는 동계올림픽이 열리고 여러분 나라에서는 월드컵이, 그리고 9월엔 지난해 못치렀던 골프 토너먼트가 열린다. 미국과 유럽의 맞대결로 75년간 이어온 라이더컵 친선대회가 잉글랜드에서 열릴 것이다. 이 대회에는 가장 세계적인 스타, 타이거 우즈도 참가할 것이다. 스포츠계는 마침내 힘찬 걸음을 다시 내디딜 것이다.

랍 휴스/잉글랜드 축구 칼럼니스트robhu@compuserv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