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중 나선/르처드 르원틴 지음/192쪽 8000원 잉걸
유전자 결정론의 호된 비판자인 리차드 르원틴(72) 교수의 새 책이 나왔다. 사회생물학을 주창했던 에드워드 윌슨은 그의 자서전 ‘자연주의자’에서 대학 위아래층에서 연구하는 르원틴을 자신의 ‘가장 소중한 적’이라고 회고한 바 있다. 그가 아니었다면, 자신의 이론이 그처럼 격렬한 논쟁의 한복판에 놓일 수도 없었겠거니와 자신의 이론을 정교하게 다듬는 일에도 다소나마 소홀했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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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포함한 동물 사회의 특성은 그 구성개체들의 행동 패턴을 통해 이해될 수 있으며, 사회학은 결국 유전적으로 코딩된 개체들의 생물학적 특성을 연구하는 일로 환원될 것이라는 에드워드 윌슨의 주장은 1975년 발표 당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가 평생을 바친 개미사회의 행동패턴 연구는 행동생태학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좌파 성향의 진보적 지식인들로부터의 거센 비판도 감당해야만 했다.
윌슨과 함께 하버드대 생물학과에 재직 중인 르원틴 교수는 사회생물학을 가장 강하게 비판하는 생물학자 중 하나다. 그는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한울·1993)와 ‘DNA 독트린’(궁리·2001)에서 사회생물학을 “극단적인 환원주의”라고 몰아부치면서 생물학적 결정론을 반대했다. 인간의 사회적 행동이 생물학적 특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은 계급간 불평등과 성·인종 차별 등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사용될 수 있으며, 지배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데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책에서 르원틴은 사회생물학을 비판하는데 머물지 않고 전체주의적 관점에서 자신의 주장을 한발 더 진전시켜나간다. 그에 따르면 “생명체는 단지 유전자에 지배받고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환경을 바꾸고 새롭게 구성하면서 능동적인 형태로 진화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콩과식물이 뿌리혹 박테리아를 제 몸안에 품고서 주변의 척박한 토양을 영양이 풍부한 자양분으로 변화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윌슨이나 ‘이기적인 유전자’(을유문화사·1993)의 리차드 도킨스가 보여주는 생태계가 DNA 이중나선 위에 정교하게 설계된 ‘기계론적 생태계’라면, 르원틴의 생태계는 유전자와 생명체(유기체)와 환경이 서로 ‘삼중나선’을 이루며 끊임없이 상호 작용하는 역동적인 생태계다. 생물학계에선 도킨스의 유전자 결정론이 훨씬 더 인정받고 있지만, 나같은 복잡계 물리학자에겐 르원틴의 주장이 더 그럴듯하게 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간 게놈프로젝트 완수 이후 ‘유전과 복제’에 관심이 부쩍 높아진 요즘, ‘이기적인 유전자’의 일방적 주장에 경도된 독자라면 르원턴의 책으로 균형을 잡아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김병수 옮김, 원제 ‘The Triple Helix : Gene, Organism, and Environment’(2000)
정 재 승(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