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대기업 계열 A사의 몇몇 직원은 지난 연말 동료들 모르게 회사측의 호출을 받았다. 한 명씩 사장실에 들어갔다 나오는 이들은 검정색 가방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가방 안에 들어있는 것은 수천만원에서 1억원에 이르는 빳빳한 현금 뭉치.
비밀 호출을 받은 사람은 회사가 절대로 놓쳐서는 안될 '필수 인력'으로 구분한 직원들이다. 이들이 받은 '특별 보너스'는 연봉에 정식으로 책정된 돈도 아니고, 실적에 따른 성과급도 아니다. 이들이 돈을 받는다는 사실은 물론 이들의 존재 자체도 극비사항이다.
공장이나 기계 등 유형의 자산보다 인적 자원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이 되는 지식기반 경제 시대를 맞아 나타난 현상이다. 우수인력에 대해 인센티브를 주는 차원을 넘어 우수인력 가운데 극소수 핵심인력에 대해선 그 이상의 파격적인 '덤'을 얹어준다.
핵심인력 관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핵심기술을 개발하는 전문 연구인력 보호가 한 축이라면 장래 경영층을 구성할 잠재력을 갖춘 인재 양성이 또하나의 축이다.
▽비밀 보너스= 핵심인력은 입사할 때부터 특별대우를 받는다. LG전자는 최고급 인력에 대해서는 입사계약을 할 때 연봉과 별도로 프로 선수처럼 계약금 형식의 '사이닝(signing) 보너스'를 지급한다. 삼성전자도 핵심 연구인력은 직급별 연봉 상한을 두지 않고 개별계약을 통해 채용한다.
기업들이 더 많은 공을 들이는 것은 입사 이후. 연봉과 성과급 외에도 A사처럼 '별봉(別俸)'을 주는 경우가 상당수에 이른다. 삼성전자처럼 다른 회사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퇴사하려는 핵심인력은 제안받은 스카우트 금액만큼 돈을 지급하기도 한다. 삼성은 이건희회장이 "디지털 시대에는 한 명의 천재가 1만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어 핵심인력에 대한 특별관리 프로그램이 갈수록 고도화되고 있다.
▽차세대 리더를 키워라= 핵심인력 관리는 차세대 리더 양성의 출발점이다. 독일 바스프 그룹의 한국 지사인 한국바스프는 본사의 핵심인력 관리시스템에 따라 미래의 경영층 후보군을 별도로 구분, 관리한다. 엄격한 평가 기준에 의해 선발되는 10% 가량의 직원들은 특별 급여 체계에 편성된다.
또 스승격인 '멘터(mentor)'를 지정받아 체계적인 리더십 교육을 받는다. 핵심인력은 매년 치밀한 심사를 받아 핵심인력군 잔류와 탈락이 결정된다. 자신이 몇 등급인지 동료 직원에게 발설하는 것은 절대 금지된다.
인재 양성의 모범사례로 거론되는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크로톤빌 연수원은 GE를 오늘날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키운 원동력이다. 잭 웰치 전 GE회장은 새로운 지도자 육성이 GE의 근본적인 혁신의 원천이라고 규정, 우수 인력을 크로톤빌에 모아놓고 집중적으로 훈련시켰다. 잭 웰치는 다른 사람은 해고해서라도 핵심인력의 임금은 올려줘라 고 강조한 것으로 유명하다.
▽2원 관리체제 필요= 한국기업들이 핵심인력 보호에 눈을 뜬 것은 98년 이후 벤처기업과 외국계기업으로 많은 인력이 빠져나가면서부터. 우수인력이 스스로 찾아오는 데 익숙했던 대기업들에게 그같은 인력유출 사태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당시 이를 심각한 '사태'로 규정한 B그룹은 외국계 기업으로 빠져나간 직원들을 대상으로 회사에 대해 불만을 설문조사해 경영에 중요한 참고자료로 삼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핵심인력이 유출돼 대체인력을 구하려면 기존 인력에게 보상했던 것보다 4배 가까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이 연구소 공선표상무는 "핵심인력에 대해서는 다른 직원과 차별화한 2원 관리체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