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욕은 음식을 먹으면 없어지고, 수면욕은 잠자고 나면 없어지며 성욕도 역시 만족하면 없어진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만족해서 그만 살고 싶을 때까지 살지 못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수명도 원래 만족하게 돼 있었는데 모두 자기 수명보다 일찍 죽는 것이 아닌가?”
19세기 러시아의 생물학자 일리아 메치니코프가 던진 물음이다.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이 있는지 여부를 떠나 과거부터 인간은 만족할 때까지 살려고 처절할 정도로 노력해 왔다.
그런데 여기에 최근 새 변수가 생겼다. 바로 ‘21세기판 불로초’라고 할 수 있는 줄기세포가 등장한 것이다.
1998년 미국의 제임스 톰슨 박사 등은 인간의 배아에서 분리한 배아줄기세포가 체외에서도 배양할 수 있고 여러 조직으로 분화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보고했다.
이후 배아줄기세포를 특정조직으로 분화시켜 특정 환자에 주입하면 조직을 재생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속에 관련 연구소식들이 아프간 전쟁 속보처럼 쏟아져 나왔다.
21세기가 시작되면서 더 깜짝 놀랄 만한 연구결과가 발표되고 있다. 성인이 이미 갖고 있는 다 자란 성체(成體)줄기세포도 배아줄기세포처럼 여러 조직으로 분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성체세포를 이용한다면 환자 자신의 세포로 병든 장기를 재생할 수 있기 때문에 윤리적 논란 없이도 난치병을 정복하기 위한 결정적인 단서가 되지 않을까 기대를 모으고 있다.
원래 성체줄기세포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1958년 당시 유고슬라비아의 대형 원전사고가 계기였다. 이 사고로 물리학자 6명이 방사선에 대량 노출됐고 골수가 파괴돼 혈구감소증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에게 건강한 사람의 골수를 이식했더니 피폐화된 이들의 골수가 살아났다. 이 과정에서 조혈모(造血母)세포라고 하는 성체줄기세포가 파괴된 조직을 근원적으로 복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줄기세포가 다양하게 분화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뒤이은 연구에서 이런 ‘재생 작용’을 하는 줄기세포가 비단 골수 뿐만 아니라 우리 몸의 거의 모든 장기에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심지어 한번 손상되면 다시는 재생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던 신경이나 심장 간 등에서도 줄기세포가 발견됐다.
작은 불씨처럼 살아있는 이들 줄기세포의 존재는 지금까지 우리가 체념했던 많은 질병들을 치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고 있다. 줄기세포가 이를 통해 과연 사람의 수명을 만족할 만큼 늘릴 묘약이 될 수 있을까?
▶오일환 교수(42)는 가톨릭대 의대를 나와 미국 템플의대에서 분자생물학 분야 이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암센터, 테리 팍스 연구소 등에서 암과 줄기세포에 대해 연구했다. 현재 가톨릭대 세포유전자치료연구소 소장으로 줄기세포 분야에서 국제적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