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수는 짜릿하다. 위기 상황을 뒤짚는 한수의 묘수는 씨름으로 치자면 들배지기 같은 큰 기술에 속한다. ‘묘수’를 둘 필요조차 없는 바둑이 명국이고 ‘묘수를 3번 두면 바둑진다’는 말처럼 묘수가 만병 통치약은 아니다. 하지만 기상천외한 묘수는 바둑의 오묘한 깊이를 느끼게 한다. 지난해 국내 바둑계에서 나온 3대 묘수를 정리했다.》
▽제13회 TV바둑 아시아선수권 결승전 (조훈현 9단(흑) 대 목진석 5단)
흑 좌하귀 대마가 백의 포위망에 갇혔다. TV 속기 대국에서 이런 식으로 걸려들면 무사하기 어렵다. 관전자들이 ‘목 5단(현재는 6단으로 승단)이 처음으로 세계대회에서 우승하겠구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조 9단은 섬광같은 수읽기로 누구도 예상못했던 흑 1을 터뜨렸다. 좌하귀 흑은 오히려 백 ○를 잡고 부활했다. 양재호 9단의 말처럼 역사에 남을 만한 묘수.
▽제6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32강전(유창혁 9단(백) 대 고노린(河野臨) 6단)일본 고바야시 고이치 9단의 직계 제자인 고노린 6단(20)과 유 9단의 대결.
반집을 다투는 아슬아슬한 승부다. 우상귀의 패로 인해 하변에서 사활 문제가 생겼다.
흑의 모양이 너무 단단해 단순히 흑 ○를 잡으면 온전히 한집을 낼 수 없다. 이 때 터진 백 1이 묘수책에 단골로 등장하지만 실전에서 찾아내기엔 쉽지 않은 수. 이후 흑 ‘가’, 백 ‘나’로 꽃놀이패가 생겨 반집을 다투던 승부가 백의 대 우세로 바뀌었다. 268수 백 불계승.
▽제1기 KT배 마스터스 프로기전 (이성재 6단(흑) 대 임선근 9단)
형세가 불리한 백은 모양을 돌보지 않고 저돌적으로 밀어부치고 있다. 백 ○는 ‘가’와 ‘나’를 동시에 노리고 있다. 하지만 이 6단은 양쪽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흑 1을 준비해두고 있었다. 이로써 ‘가’와 ‘나’ 어느 쪽도 성립하지 않는다. 이 6단의 녹슬지 않은 기재를 보여준 한 수.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