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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흐르는 한자]姦 通(간통)

입력 | 2002-01-06 17:39:00


姦 通(간통)

姦-간음할 간 紊-얽힐 문 淫-음란할 음 僕-종 복 絞-목맬 교 ¤-물고일 저

인류의 역사를 보면 옛날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性關係(성관계)가 紊亂(문란)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을 보자. 춘추전국시대에는 남녀관계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지러워 각종 淫行(음행)의 기록이 무척 많다. 아버지의 첩을 범하는가 하면 며느리를 가로채어 범한 예도 많다. 당시는 婚外情事(혼외정사)를 ‘通’(통)이라고 했는데 간혹 상대방의 아내를 교환하여 淫行하기도 했는데 그것을 ‘通室’(통실)이라고 했다. 또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姦淫(간음)하는 것을 ‘烝’(증)이라 하였다.

우리는 어떤가. 文獻(문헌)을 보면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남녀관계는 매우 자유로웠으며 守節(수절)이 미덕시된다거나 再嫁(재가)가 죄악시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혼전의 남녀가 함께 강에서 목욕을 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高麗圖經(고려도경)은 전하고 있다. 그러다 朝鮮이 서면서 朱子學(주자학)의 禮俗(예속)에 물들어 守節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飮食男女(음식남녀)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本能(본능). ‘列女傳(열녀전)끼고 서방질한다’는 속담에서 보듯 예나 지금이나 亂倫(난륜)이 없지 않았다. 朝鮮 世宗 때의 일이다. 平康(평강) 縣監(현감) 崔仲基(최중기)의 처 兪甘同(유감동)은 천하의 淫婦(음부)였다. 남편에게 소박맞고 남의 妓妾(기첩)이 된 뒤 자칭 娼妓(창기)라고 하면서 당대의 官吏에서 사대부, 匠人(장인), 奴僕(노복)에 이르기까지 도합 50명과 和姦行脚(화간행각)을 벌여 斬刑(참형)에서 笞杖(태장)을 당한 자만 해도 30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또한燕巖(연암)朴趾源(박지원)의 단편소설 虎叱(호질)에 나오는 ‘東里子’라는 女人은 젊어서 寡婦(과부)가 되어 守節(수절)한 결과 烈女賞(열녀상)까지 받았지만 그의 몸에서 난 姓이 다른 아이가 무려 다섯이었다. 비록 소설이지만 18세기의 社會相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러나 朝鮮時代는 姦淫을 嚴하게 다스렸다. 당시 姦通(간통)에는 和姦, 盜姦(도간), 强姦(강간), 幼姦(유간) 등의 區別이 있었는데 이 중 强姦은 絞首刑(교수형)에 처했고 未成年者(미성년자)는 杖(장) 100대에 3000리 유배형에 處하되 被姦(피간)된 婦女子는 처벌하지 않았다. 물론 和姦이나 盜姦은 男女 같은 罪로 다스렸는데 특히 姦婦(간부)가 살았던 집은 부수어 없애버리고 그 자리에다 연못을 만들었으며 그 연못을 [澤(저택)이라고 했다.

鄭 錫 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sw478@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