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웨스트오스트레일리아주(州)의 주도(州都) 퍼스의 시청 현관을 들어서면 국내 여느 관공서처럼 바로 안내 데스크가 나온다.
특이한 것은 이곳 근무자들이 과장급 이상의 40대 중견 공무원들이라는 점. 젊고 예쁜 일용직 여직원들이 배치되는 우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풍부한 행정 경험을 바탕으로 방문객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웬만한 민원은 민원인이 누구인지를 불문하고 현장에서 직접 처리해준다. 재산 또는 분쟁과 관련된 복잡한 민원 사항의 경우 1대1로 붙어 일일이 담당 부서를 찾아다니며 도우미 역할을 한다.
호주 공무원들의 친절은 나면서부터 몸에 배인 걸까.
이에 대해 주호주 한국대사관 김종근(金鍾根) 서기관은 “불황기였던 80년대 초부터 혹독하게 실시된 구조조정과 혁신적인 처우 개선, 이에 따른 공무원들의 직업에 대한 자긍심이 페어플레이 정신을 생명으로 하는 호주만의 민관(民官) 관계를 만들어낸 것 같다”고 풀이한다.
연공서열에 따른 계급제가 아닌 직위 분류제(Job Posting·직무 자체에 따라 책임과 권한이 부여되는 근무 형태)라는 호주의 전통은 음해와 술책에 의한 경쟁보다는 협력과 생산성을 공통분모로 한 페어플레이 정신을 더욱 성숙시켰다.
호주국립대(ANU) 프란츠 J 마스턴 박사는 “공무원들의 시민에 대한 태도는 상업적 서비스정신보다는 직업에 대한 자긍심과 자신감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호주 공무원에게 뇌물수수는 거론 자체가 금기일 정도다. 의례적인 선물도 호주 20달러(약 1만4000원) 정도로 제한돼 있다. 실례로 뉴사우스웨일스주의 한 경찰관은 지난해 초 관할구역내 주유소에서 5차례에 걸쳐 공짜 급유를 받았다가 공직에서 쫓겨났다.
정권이 바뀌어도 호주 공무원들은 동요하지 않는다. “우리는 국민과 계약 관계에 있으며 그들에게 봉사함으로써 존경을 받고 있다”며 “그밖의 (정치 등) 어떤 요인도 우리의 신성한 계약을 해칠 수 없으며 우리는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몸가짐이 흐트러지지 않게 최대한 노력한다.” 웨스트오스트레일리아주 농업부의 헨리 스타인지 무역개발국장은 호주 공무원들의 직업 윤리를 이렇게 정리했다.
퍼스(호주)〓반병희기자bbhe42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