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언론이 최근 공개한 여론조사에는 12월19일 실시될 대통령 선거의 여야 유력 후보들의 가상대결이 포함됐다. 여론조사기관에 따라 여야 선두주자의 지지율은 2.3%에서 12.6%까지 차이가 났다.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적 경쟁집단인 영호남에서의 지지율 격차다. 동아일보 조사결과를 보면 민주당의 선두주자인 이인제 상임고문은 호남에서 70.5%의 지지로 8.9%에 그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를 압도했다. 반대로 이 총재는 영남에서 이 고문을 34.4%포인트나 앞서 어떤 지역에서보다 격차가 컸다. 이 총재와 민주당의 다른 주자들과의 대결 구도에서도 결과는 비슷했다.
이렇듯 두 지역에서만 나타난 큰 지지율 격차의 의미는 무엇일까. 누가 당선돼도 지역간 갈등과 마찰은 심각하리라는 불길한 예언이다. 아울러 김대중 대통령과 현 정권이 지역감정 해소에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양대 선거를 앞두고 벌써부터 지역감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지역감정은 선거라는 ‘정치적 장’이 벌어질 때마다 증폭돼왔다. 지역감정은 정권의 성패를 가름할 정도의 위력을 가진, 김 대통령의 표현처럼 ‘악마의 주술’과도 같은 것이다. 필부필부(匹夫匹婦)는 물론이고, 지식인들도 ‘편견의 노예’로 전락시킨다.
분단 반세기만에 성사된 남북정상회담마저 선거에서 여당의 악재(惡材)로 둔갑하게 만든 게 지역감정이다.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대한 반응도 한편에서는 축하와 환호, 다른 한편에서는 냉소와 안타까움으로 나타나게 했다.
김 대통령만큼 지역감정의 심각성을 잘 아는 정치인도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대통령 당선 일성(一聲)이 “지역 간 갈등의 시대를 마감하고 국민화해와 통합의 밑거름이 되겠다”는 것이었을까. 그는 취임사에서 “다시는 무슨 정권이니 무슨 도 차별이니 하는 말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다짐에도 불구하고 지난 4년 동안 지역감정은 더 악화됐다는 게 중론이다. 여야는 물론 언론도 그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하지만 최대의 책임은 정권의 몫일 수밖에 없다.
긍정적인 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적어도 호남지역민들은 맺힌 한을 어느 정도 풀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역감정의 가해자와 피해자들이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체험을 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지금 지역감정의 피해자냐 수혜자냐를 떠나 가해자로도 기록될 수 있는 심각한 위기상황에 처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호남지역에서는 “앞으로 영호남 갈등, 호남쪽 시각으로 본다면 ‘호남 차별’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며 그 피해를 후손들이 떠안고 살게 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이 최근 인사의 공정성을 거론한 것은 인사가 지역감정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한 것일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의지를 의심케 하는 일은 계속되고 있다.
김 대통령에게 남겨진 시간은 1년 남짓. 김 대통령은 대선 당시 “집권하면 1년 이내에 지역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장담했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1년은 짧지만은 않다. 최후까지 얼마나 노력했느냐도 후일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더욱 중요한 대목은 다음 대통령 자리를 노리는 여야 정치인들의 지역감정에 대한 해법이다. 그들의 답을 말과 행동으로 듣고 보고 싶다.
권순택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