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복 CJ대표(좌) 와 이화경 동양제과 사장
영화계에 대기업 열풍이 다시 몰아치고 있다.
90년대 중반, 삼성 현대 대우 그룹이 영화계에 진출했다가 97년 외환위기로 인해 본전도 건지지 못하고 떠난 적이 있다. 이후 3년만에 대기업들이 영화계로 뛰어들고 있는 것. 물론 최근 한국 영화의 대박 바람이 기폭제가 됐다.
현재 제일제당 동양그룹 롯데그룹 3개 그룹이 ‘3두 마차’를 형성하며 영화 시장에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이들 가운데 맏형격은 제일제당계열의 CJ엔터테인먼트(이하 CJ). 후발주자인 동양과 롯데그룹도 기존 충무로 영화계가 하기 어려운 멀티스크린 확보 등으로 영화계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들 그룹들은 그룹 오너가 영상산업 진출을 선두에 나서 지휘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과 마케팅으로 국내 영화 시장의 석권을 노리고 있다.
#어떻게 움직이나
제작, 투자, 배급, 극장(CGV극장을 운영 중) 등 영화 사업 전부문에 진출한 CJ가 영화계 최초로 2월 코스닥 등록을 앞두고 있다. 동양과 롯데는 이미 시작한 극장 사업을 더욱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2002년 연말이 되면 이들 대기업 계열 극장들은 멀티플렉스의 약 80%를 차지하게 된다.
동양은 개관 1년반 만에 관객 1000만명을 넘은 메가박스를 비롯해 부산 수원 등 32개 스크린을 갖고 있다. 올해 중반까지 대구(3월·10개), 부산 해운대(7월·10개)를 추가해 모두 52개 스크린으로 확대된다. 또 내년 중 신촌에 11개 스크린을 지을 예정.
동양은 이처럼 탄탄한 유통망을 토대로 내년까지 약 1000억원을 투자해 영화 제작에도 본격 참여할 계획이다.
롯데는 올해 스크린 확충에 주력할 계획이다. 일산 대전 광주 등의 백화점 내에 39개 스크린을 확보했고 4월까지는 창원 안산에 15개 스크린이 추가된다. 특히 롯데극장 체인은 백화점 쇼핑객을 관객으로 흡수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마케팅 VS 베팅
대기업들은 올해 초강수 마케팅을 펼친다. 동양의 메가박스는 관객들이 우주선 안에 있는 듯한 분위기에, 16개 스크린을 하나의 동선에 배치하는 등 국내 최고 시설로 다른 멀티플렉스 시설을 압도하고 있다.
CJ는 관례로 내려오던 5:5의 부금비율(극장 수입을 극장과 배급사가 나누는 비율)을 깨기도 했다. 2000년말 공동경비구역 JSA 의 제작 배급사인 CJ가 극장을 붙잡기 위해 극장에게 돌아가는 몫을 10% 더 올려 6(극장):4(CJ)로 조정한 것이다.
이들 그룹들은 모기업 오너들이 영화 사업을 전폭 지원하고 있다. 특히 동양의 경우 창업주의 차녀인 이화경 동양제과 사장이 매주 회의를 주재하는 등 영화 사업을 사실상 진두지휘하고 있다.
'시네마서비스' 강우석(좌), 차승재 사이더스대표
#토착 충무로의 반응
그동안 대기업의 진출을 관망해 오던 ‘토착’ 충무로 영화계도 차츰 대응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12월 충무로 간판 영화사인 ‘시네마서비스’는 자회사인 배급사 ‘청어람’을 내세워 올해 배급 편수 늘리기에 나서기도 했다. 대기업들의 배급 영화 독점에 대비하기 위한 것.
하지만 충무로측은 대기업 자본에 대해 우위를 자신하고 있다. 영화제작사 ‘싸이더스’의 차승재 대표는 “현재 영화계에 들어와 있는 자금 액수가 4000억원대로 영화 제작이 자금유입을 못따라가는 상황”이라며 “대기업의 자금력보다는 콘텐츠 생산 능력이 향후 영화계 판도를 좌우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충무로의 한 제작사는 “대기업들의 영화 자본이 리스크가 비교적 적은 유통(배급)에만 몰리면서 결국 유통이 제작을 좌우하는 상황이 초래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