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진주’로 불리는 뮤지컬 배우 최정원(32).
까무잡잡한 피부에 열정적인 춤, 뛰어난 가창력이 그에게 가져다준 별명이다. 그는 남자 뮤지컬 배우 남경주의 단짝으로 무대에 출연하면서 남경주와 함께 지난 10여년간 국내 정상의 뮤지컬 배우로 활동해왔다. 물론 99년 최정원의 국내 첫 수중분만 장면이 TV로 공개되기 이전 상황이다.
뮤지컬 ‘카바레’를 준비 중인 그를 4일 예술의 전당 연습실에서 만났다. 이날 연습장에는 ‘진짜’ 남편 임영근씨(코리아픽처스 공연기획팀장·31)와 딸 수아(3)가 동행했다.
최정원은 19일부터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무대에 오르는 ‘카바레’에서 여가수 샐리로 출연한다.
이 작품은 1966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뒤 현재 8000여회 이상 공연되고 있다. 이번 무대에서는 영화 ‘아메리칸 뷰티’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거머쥔 샘 멘데스가 98년 각색한 작품이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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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외양은 속옷 차림의 무희와 관능적인 쇼 등 퇴폐적으로 보이지만 그 속살은 나치의 인종차별과 억압에 대한 풍자와 고발. 1930년대 독일 베를린의 카바레 ‘킷 캇 클럽’을 중심으로 여가수 샐리(최정원)와 미국인 소설가 클리프(정동환), 하숙집 여주인 슈나이더(이경미)와 유대인 가게 주인 슐츠(이인철)의 사랑이 그려진다.
“무희들의 선정적인 춤 속에 샐리는 ‘인생은 카바레 같은 것. 카바레로 찾아오세요∼’라며 달콤한 노래로 사람들을 유혹하죠. 하지만 얼굴에 표정이 없는, 빵을 위한 가슴 아픈 춤과 노래입니다. 야하다기보다는 슬픈 작품입니다.”
최정원은 87년 고교 3학년 때 롯데월드 예술극장의 ‘뮤지컬예술단’ 1기로 입단한 뒤 15년째 무대에 서고 있다. ‘카바레’는 16번째 작품.
한 해 1, 2편으로 만족해야 하는 ‘뮤지컬의 춘궁기’가 길었던 탓에 의외로 출연작이 많지 않다. 한때 롯데월드에서 스페인 춤을 추는가 하면 SBS TV 쇼탤런트 시절 백댄서와 코러스를 하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그래도 버릴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뮤지컬이었다.
“망부석처럼 무대를 기다리는 마음 아세요. 한 작품 끝내고 1년 가까이 목이 빠지게 기다릴 때마다 ‘왜 이 길을 선택했나’ 하고 회의도 했지요. 이젠 무대에 자주 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93년 ‘마지막 춤을 나와 함께’로 최정원 시대가 열렸고 지난해에만 ‘시카고’ ‘렌트’ ‘키스 미 케이트’ ‘틱 틱 붐’ 등 4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연습하다 딸의 모습을 발견한 그의 얼굴이 밝아진다. 수아와는 하마터면 가족의 인연이 끊어질 뻔했다.
“정원씨가 임신 초기에 무대 연습 중 쓰러졌는데 한 병원에서는 아이가 죽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다른 병원에서 검사받은 결과 아이는 살아있지만 생존 확률이 20%라고 했습니다. 정원씨가 몸조리를 잘할 수 있도록 제가 각종 자료를 찾아 공부했고 수중분만도 그런 과정을 거쳐 절박하게 선택한 것이었습니다.”(남편 임씨)
임씨는 계속 “엄마”를 부르는 딸을 달래면서도 “정원씨는 무대에 있을 때가 가장 예쁘다”고 말했다. ‘닭살’이다.
어쨌거나. 최정원은 “남편과 딸이 있어 내 ‘인생의 뮤지컬’은 더 풍요로워졌다”고 말했다.
공연은 19일∼2월24일 화 목 금 오후 7시반, 수 토 일 오후 4시 7시반. 3만∼5만원. 1588-7890
김갑식기자g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