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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하기 좋은 나라]중기 "규제대신 '날개' 달아주오"

입력 | 2002-01-08 17:30:00


《기업은 생산 투자 고용 수출을 통해 국부(國富)를 창출하는 경제활동의 주역이자 ‘자본주의의 꽃’이다. 정부도 국가경제에서 기업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인식해 지난 4년간 5000여건의 규제를 없애거나 개선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산업 현장의 기업인들은 “기업하기가 여전히 힘들고 애로사항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고 호소한다.

경제섹션 ‘Money & Business’의 2002년 핵심 컨셉트를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정한 동아일보는 ‘기업친화적 환경’을 만들기 위한 기획시리즈를 연재한다. 우선 업종별로 기업이 느끼는 고충과 불합리한 규제, 정책당국에 대한 업계의 건의사항 등을 전달하는 기업 현장의 목소리 ‘이것만은 고치자’를 매주 수요일자 B1면에 싣는다.》

■이것만은 고치자①

“출자총액, 집단소송, 규제완화 등등의 용어가 뉴스에 자주 나오지만 우리 같은 중소기업 사장에게는 ‘남의 얘기’일 뿐입니다. 인건비는 중국보다 7, 8배나 비싼데도 당장 쓸만한 인력이 없어 애를 먹는 판이니….”

경기 안산시에서 종업원 100여명 규모의 전자부품 제조업체를 경영하는 흥진정공 이창호(李昌浩) 사장. 지난해 신문 경제면을 장식한 정부와 재계의 규제완화 공방에 대해 “중요한 문제라는 건 짐작이 되지만 피부에 와 닿지는 않더라”고 말했다.

현 정부가 경제정책의 핵심 테마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내걸고 출범한 지 약 4년. 그러나 이 사장은 “금리가 떨어져 이자부담이 줄어든 것 빼고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작년 여름 중국 상하이를 방문하고 돌아온 그는 “중소기업 사장 중에 공장을 중국으로 옮기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 애로에 귀 기울여야〓‘기업하기 좋은 나라’야말로 한국경제가 재도약하기 위한 최적의 해법이라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제조업 현장에서 느끼는 경영환경 체감도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전경련 대한상의 등의 주재로 분기마다 열리는 업종대표 간담회에서는 “제조업 경쟁력을 키울 획기적 방안이 나오지 않으면 산업 공동화(空洞化)가 빚어질 것”이라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온다.

이는 정책 당국자와 민간 경제전문가, 경제단체들이 제도개혁이라는 ‘총론’에만 매달리느라 정작 ‘각론’인 현장의 애로에는 관심을 쏟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한국경제연구원 박승록(朴勝祿) 연구위원은 “거창한 규제완화 담론을 소홀히 다뤄서도 안되지만 한국 산업을 지탱하는 주요 업종들이 어떤 애로를 겪는지,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떤 지원책이 필요한지 세밀하게 들여다봐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해당업체는 절박하다〓섬유 철강 석유화학 정유 시멘트 제지 목재 등 이른바 ‘굴뚝’ 업종의 기업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정부에 애로를 호소하고 개선책을 건의하지만 받아들여지는 사례는 흔치 않다. 이들의 요구사항은 △공동폐수처리장에 대한 산재 보험료율 인하(섬유) △수출신고 수리물품의 적재기간 연장(석유화학) △전문연구요원제도 확대(조선) △과잉생산설비 폐기에 대한 세액공제제도 부활(제지) 등 다양하다.

언뜻 보면 정부 고위층이 고민하기엔 함량이 떨어지는 듯한 사안. 해당업계의 사정을 깊이 모르면 기업들이 이런 문제로 얼마나 절박하게 고민하는지 가늠하기도 쉽지 않다. 당연히 여론의 공감을 이끌어내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업계간, 지역간, 업체간 이해가 엇갈리거나 환경침해적 요소를 안고 있는 요구도 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눈높이를 조금만 낮춰 생산과 수출의 주역인 기업의 편에서 관심을 기울이면 현행법 테두리내에서 시행할 수 있는 사항도 얼마든지 있다”고 하소연한다.

전경련 신종익(申鍾益) 규제조사본부장은 “기업들이 일상적인 생산활동에서 겪는 어려움을 진지하게 경청해주는 것만으로도 투자의욕을 살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막연한 구호나 립서비스가 아니라 현장의 애로를 차근차근 해결할 때 완성된다는 얘기다.

박원재기자 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