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세상을 떠나실 때도 눈이 오시더니만 1주기 때도 눈이 오시네요.”
눈발이 날리던 7일 저녁. 서울 대학로 파랑새소극장에서 열린 동화작가 정채봉(1946∼2001) 1주기 추모행사장을 찾은 소설가 김승옥씨(61)는 이렇게 감회를 밝혔다. 정씨는 지난해 1월7일 암으로 55세의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눈발을 헤치고 달려온 200여명의 지인들 중에는 수필가 피천득 선생을 비롯해 홍기삼 교수 등 동국대 문인 선후배, 시인 정호승 류시화, 가수 노영심, ‘채봉사랑동우회’ 팬클럽 독자들이 눈에 띄었다. 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당선한 뒤 부친의 업을 잇고 있는 딸 정리태씨(24) 등 유가족도 함께 자리했다.
행사장에는 고인의 첫 번째 동화집인 ‘물에서 나온 새’(1983)부터 최근 나온 추모 동화집 ‘엄마품으로 돌아간 동심’까지 고인이 남긴 수십권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를 바라보는 영정 속 고인의 모습은 어린 아이처럼 천진하게 웃고 있었다.
참석자들은 그의 동시로 만든 노래를 따라 부르고, 대표작 낭송을 경청하면서 고인의 맑은 사랑이 얼마나 소중했던지를 추억했다.
대학교 선배인 홍기삼 교수는 “고인이 한때 동화 대신 소설을 쓰려던 것을 극구 말렸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78년 고인이 샘터사에 입사했을때부터 그를 지켜본 김재순 전 국회의장(샘터사 창립자)은 “청년 때부터 죽을 때까지 웃음이 변치 않았던 ‘평생 소년’”이었다고 고인을 회고했다.
샘터사 입사 선배로 고인이 가장 닮고 싶어했다는 작가 김승옥씨는 “고인은 한 인간이 살 수 있는 완벽한 삶을 살았다”면서 “불교의 ‘마음’과 가톨릭의 ‘용서’가 정채봉 문학의 핵심 메시지”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간암 수술 후 잠시 기력을 되찾았던 2000년 여름에 비디오로 촬영한 인터뷰 장면도 공개됐다. 이 인터뷰에 나오는 고인의 말은 마치 유언인 듯해서 참석자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이 땅의 아동문학을 부흥시켰고 성인동화를 개척했으며 400만부 가까이 팔리는 베스트셀러 작가였지만 고인의 소원은 아이처럼 소박한 것이었다.
“이 땅에 푸른 풀밭이 좀더 넓어지기를, 부디 아름다운 삶이 더 풍성해지기를 바랍니다. 편안히 계십시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