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65)이 7일 은퇴를 발표하자 온 프랑스가 떠들썩하다. 거의 모든 신문과 방송들은 그의 은퇴를 머리기사로 다뤘다.
권위지인 르몽드와 르피가로도 1면과 안쪽의 1, 2개면을 할애해 화려한 패션쇼의 커튼 뒤로 물러가는 거장(巨匠)의 생애를 다뤘다. 파리 시민들도 시 16구에 위치한 그의 살롱에 몰려와 ‘현대 패션의 모차르트’라고 불린 그의 퇴장을 아쉬워했다.
디자이너 한 사람의 은퇴에 프랑스 전체가 이처럼 법석을 떠는 이유는 이브 생 로랑이 전후 프랑스의 자존심이자 문화강국 프랑스의 상징이기 때문.
알제리 태생의 이브 생 로랑은 53년에 크리스티앙 디오르에 입사해 두각을 나타낸 뒤 독립, 62년 파리에 이브 생 로랑 패션 살롱을 열었다. 그는 현대적이고 분방한 디자인으로 60년대 이후 세계 패션계를 풍미했다. 여성 바지 정장을 처음 도입했으며 그가 창안한 야회복 재킷인 턱시도는 멋과 스타일의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83년에는 생존한 디자이너로는 처음 그의 디자인 세계를 조명하는 패션쇼가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열렸다.
85년 고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그에게 최고 영예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했다.
그는 7일 미리 작성한 성명을 통해 지난 몇 년간 우울증을 앓았다고 말했을 뿐 구체적인 은퇴 사유는 밝히지 않았다. 그가 99년에 이브 생 로랑(YSL) 브랜드를 매각한 패션 기업 구치와의 갈등과 세계 패션의 조류 변화 등이 패션계가 추측하는 은퇴 이유. 그의 은퇴 후에도 구치 소유의 이브 생 로랑 브랜드는 그대로 유지된다.
프랑스 언론들은 그의 은퇴로 20세기 고전적 순수 디자인 시대가 막을 내렸다며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이 이브 생 로랑의 분방한 창조 정신과 예술가로서의 자부심을 함축하고 있다고 썼다.
“여자에게 가장 아름다운 옷은 그녀를 안고 있는 사랑하는 남자의 두 팔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런 남자가 없는 여자들을 위해 내가 존재한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