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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포럼]정재하/춘천 발전 가로막는 ‘미군부대’

입력 | 2002-01-10 17:45:00


올해는 월드컵대회가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해이지만 강원도의 도청소재지인 춘천에서는 축구 경기 한번 볼 수 없다. 외지 사람들은 산업화시대를 맞아 생긴 소양강 다목적댐을 비롯해 춘천댐 의암댐 등이 있는 것을 두고 춘천이 호반의 도시라 살기 좋은 곳이라고 말들 하지만 우리에게는 비아냥거리는 듯한 소리로 들린다. 서울에서 경춘선 열차를 타고 종착지인 춘천역에 내리면 시내 한복판을 미군 부대가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아야 하는 상황에서 ‘호반의 도시’는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정부에서는 군비행장 주변지역 주민들을 소음관련 특별법을 만들어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일이 있다. 이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가슴이 두근거렸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이는 한국군 비행장 주변에 국한된 것이었다. 춘천에도 한국군 항공부대가 있으니까 해당 지역 주민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춘천의 숙원인 미군부대(CAMP PAGE)는 여기서 제외되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춘천에 미군이 주둔한 지 54년, 반세기가 넘었다. 그동안 도움을 주었던 고마운 일도 있었지만, 이로 인한 고통이 컸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춘천 시내의 평평한 땅 20여만평은 모두 미군부대가 차지하고 있고, 미군부대를 제외한 나머지 땅은 언덕이나 산등성이라서 올바른 도시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다.

미군 비행장 주변 학교의 학생은 비행기 이착륙으로 시끄러워 창문을 닫고도 공부를 할 수 없는 지경이다. 수십 년 된 집을 개축하려고 해도 고도제한 등의 규제 때문에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춘천시가 미군부대 주변의 일부도로를 정비하는 데도 미군부대와 복잡한 협의절차를 거쳐야 했다. 공사 자체는 며칠이면 될 것을 협상하는 데 5년이나 걸렸다면 누가 믿겠는가. 그래도 우리 국방부 관계자는 그것도 빨리 된 것이라고 말한다.

지방자치시대에 우리 땅을 우리 마음대로 못쓰는 이 아픔을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하는가. ‘우리 땅 되찾기 시민단체’는 미군부대가 사용하고 있는 땅을 조건 없이 반환하라고 아우성치고, 춘천시 의회도 ‘미군부대 관련 대책위원회’를 설치해 피해를 조사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피해를 호소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다.

미군부대가 춘천시민이 원해 주둔한 것은 아니다. 당시 국가적 차원의 방위를 위한 결정이었을 테니 춘천 시민이 겪는 아픔은 당연히 국가에서 해결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지난해 춘천과 비슷한 15개 자치단체에서 공동으로 요구한 ‘미군 공여지역 지원 및 주민권익 보호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에서 긴 겨울잠을 자고 있다.

국회는 국민의 아픈 함성을, 미군부대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는 주민의 심정을 깊이 인식해 관련법을 조속히 제정해주기 바란다. 정부도 한국군 비행장 주변지역 주민들에 대해 소음 관련 특별법을 제정해 지원해주듯이 미군부대 비행장 주변 주민에 대해서도 똑같은 대책을 강구해주길 간절히 소망한다.

정재하 춘천시의회 부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