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초다 보니 또 술이야기다. 오늘의 주인공은 골프여왕 박세리(25·삼성전자). 지난해 시즌 5승을 올리며 2000년의 부진을 말끔히 씻어낸 박세리가 무슨 근심이 있어 새해부터 술을 마신 것일까.
사실 박세리는 여간해서는 술에 취하지 않는다. 취한다 해도 자세 하나 흐트러지는 법이 없다. 귀국하면 항상 절친한 친구들과 술자리를 벌여 도수 높은 술을 양껏 마시곤 하지만, 술자리가 끝나면 말짱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 평소 습관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지난해 12월 말, 박세리는 뒤를 돌봐주고 있는 삼성전자의 한 직원 집에 집들이 초대를 받았다. 그가 좋아한다는 술 매취순 10병이 나왔다. 그런데 어느새 박세리가 홀짝홀짝 이 병들을 모두 비워버렸다. 추가로 20병이 더 나왔지만 역시 모두 바닥이 났다. 물론 박세리 혼자 마신 것은 아니었다. 집주인도 마셨고 초대받은 다른 사람들도 함께 술잔을 나눴다. 그러나 술자리가 끝나갈 무렵 박세리는 평소 모습이 아니었다. 결국 경호원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를 떠야 했을 정도니까.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바로 아버지 박준철씨 때문이었다. 박세리는 지난해 아버지가 아프다는 말을 전해듣고 마지막 대회 출전을 포기한 채 귀국했다. 그 후 곁에서 오랜 시간 간병했지만 아버지의 완쾌를 보지 못했던 것. 겉으로는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았지만 한 잔씩 털어넣은 술에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해버린 것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었을까, 아니면 곧 미국으로 떠나 더 이상 곁에 있을 수 없는 자신을 원망해서였을까. 새해 초 골프여왕의 과음이 안쓰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