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륙에 불어닥친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 신드롬이 황해를 건너오고 있다. 자서전, 회고록, 전기, 탐방기 등 마오를 주제로 한 책들이 줄줄이 쏟아지고 있는 것.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도박이 한창인 중국 사람들이 혁명가 마오에 보내는 열의는 분명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그것은 춥고 배고픈 러시아 인민이 좋았던 소비에트 시절을 그리며 혁명가 레닌(1870∼1924)을 흠모하는 것과는 다르다.
사후 26년이 지난 지금에도 마오의 초상은 톈안먼(天安門) 광장을 지키고 있고, 젊은이들은 마오의 동상 앞에서 백년가약을 맺으며, 노동자들은 마오의 초상을 부적처럼 지니고 다닌다. 얼핏 이해하기 힘든 이런 중국인들의 행동이 지금 ‘마오 다시 읽기’를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최근 출간된 ‘모택동 자서전’(다락원)과 ‘모택동 자전’(평민사)은 모두 지난해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재출간한 ‘모택동자전(毛澤東自傳)’을 번역한 것이다. 인민들에게는 자본주의 학습서로 읽혔을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앞지를 만큼 폭발적인 인기로 지금까지 베스트셀러 수위를 고수하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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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처음 발간된 마오 자서전은 ‘중국의 붉은별’로 유명한 미국 기자 에드가 스노우가 마오의 구술을 받아적고 마오가 직접 손을 봐서 출간했다. 당시 44세였던 마오는 1934년10월부터 4개월간 장장 1만 2,500km의 죽음의 대장정을 성공한 뒤 당 지도권을 장악하고 일본군과의 혈전을 앞둔 때였다.
여기서 마오는 부농집안출신의 농촌 지식인에서 혁명가로 시대적 사명에 눈떠가는 파란만장한 일생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재산밖에 몰랐던 아버지에게 반항하던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 반공세력인 민단(民團)에 잡혀 죽을 고비를 수 차례 넘겼던 숨가쁜 순간, 숫적으로 10∼20배나 적은 홍군(紅軍·농민이 주축이 된 중국공산당 군대)으로 적군에게 승리한 비결, 그리고 트로츠키자 등 반대파의 내부투쟁의 과정 등이 소상하게 들어 있다.
지난 12월 출간된 ‘나의 아버지 모택동’(전2권·범우사)에는 그의 딸 리민(李敏·65)이 증언하는 또 다른 ‘인간’ 마오를 볼 수 있다. 아버지로서 마오는 사적으로는 자상했지만 공적으로는 엄격했던 것으로 그려져 있고, 정치가로서 마오는 인민의 고충을 두루 살폈던 영웅적 지도자로 묘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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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나온 ‘모택동비록’(문학사상사)은 일본 산케이신문이 99년 마오가 저지른 과오에 초점을 맞추고 심층 취재한 내용을 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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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말부터 벌인 곡물 철강 증산사업에 실패한 마오가 덩샤오핑과 류사오치(劉少奇) 등 실권파에 밀리자 66년부터 10년간 100만명의 학생 홍위병을 동원해 일으킨 문화대혁명의 피비린내를 담고 있다. 무려 1억명이 피해를 입었다는 정치반란극 와중에서 벌어진 처절한 권력 투쟁 과정에서 마오의 또 다른 얼굴을 볼 수 있다.
지난해 여름 중국 전역을 취재한 흥미로운 현장보고서 ‘정운영의 중국경제산책’(생각의나무)에서는 급속한 자본주의화의 물결속에서도 굳건하게 서있는 마오의 큰 그림자를 엿볼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공부한 저자는 돈 냄새를 맡은 중국 인민들에게 문화대혁명이란 “마오 동지의 인간적 실수”일 뿐이며 그가 없었다면 오늘의 중국도 없었을 것”이라는 모범답안을 가지고 있었다고 증언한다.
‘중국을 혁명으로 이끈 마오를 잊지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