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권(立法權)은 국회에 속한다.’(헌법 제40조)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정치권은 헌정사상 극히 일부기간을 제외하고는 국회의 고유권한조차 지켜내지 못했다. 민주주의의 기본인 삼권분립(三權分立) 정신에도 불구하고 ‘제왕적 총재’가 당을 장악함으로써 의원들은 국회에서 총재의 뜻을 집행하는 ‘거수기’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은 대통령이 당 총재를 겸하는 여당의 경우 더욱 심해 국회가 정부에 사실상 예속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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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제냐, 내각제냐에 관계없이 정부가 사실상의 입법기능이라 할 수 있는 법안제출권을 갖고 있는 나라는 별로 없다. ‘3김(金) 시대’의 끝이 보이면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는 당권-대권 분리는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으로 돌아가는 의미가 있다. 입법권과 행정권 분리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당정 분리〓당원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경우, 그 임기 동안에는 당직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민주당안의 핵심.
대통령의 당직 겸임 금지는 대통령이 국회의원에 대한 생사여탈권이라 할 수 있는 공천권을 갖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게 될 경우 당은 행정부의 논리가 아닌, 당 자체의 독자적 노선과 이념체계를 가지고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여야 보스들 간 권력투쟁의 볼모가 돼야 했던 의원들의 재량권도 훨씬 커질 것으로 보인다. 즉, 의원들은 대통령이나 총재의 ‘방패막이’ 역할에서 벗어나 보다 소신을 갖고 의정에 임할 수 있을 것이다. 의원들은 대통령이 아닌 당원 우선, 국민 우선의 정치를 구현해야 하기 때문에 정쟁보다는 정책 대결을 지향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도 있다.
▽한나라당의 모색〓한나라당 내에서도 당권-대권 분리론이 점차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윤곽은 15일 당 국가혁신위 워크숍과 17일 이회창(李會昌) 총재의 연두기자회견에서 드러날 전망이다.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한나라당의 당권-대권 분리 논의는 민주당과는 성격이 좀 다르다. 여당인 민주당의 논의가 당정분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한나라당의 논의는 이 총재 견제 쪽에 맞춰져 있다.
이 총재 역시 당내 비주류들의 ‘권력 분점’ 요구를 일부 수용하는 차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는 측면이 강하다.
총재직을 없애고 선출직 부총재들이 합의제로 당을 운영하는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당내 일각의 여론에 대한 이 총재 주변의 반응도 그렇다. 어차피 당권을 넘겨줘야 한다면 차라리 당권이 특정인에게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해 집단지도체제를 받아들이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한계와 우려〓당권-대권 분리 방침이 당헌에 명시됐다 하더라도 정작 대통령이 되면 당에 대한 간섭의 유혹을 쉬 뿌리치기 힘들 것이다.
특히 대선후보로 확정되면 당내에 후보중심의 인맥이 뿌리를 내리게 되고, 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자연히 당에 대한 ‘원거리 조종’이 가능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대권-당권 분리에 따라 당권이 분점될 경우 일본식 계보정치의 출현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지적도 있다.
한신대 정치학과 조정관(曺定官) 교수는 “민주당 안대로 당권과 대권이 분리될 경우 대통령이 당권을 분점한 최고위원 중 일부와 합종연횡을 해서 당에 대한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려는 유혹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총재직 겸임과 당권-대권 분리 비교표
총재직 겸임
당권-대권 분리
당 지도체제
·대통령직과 총재직 겸임
·대통령이 당권 장악
·대통령의 당직 겸임 금지
·집단지도체제
당론 결정
·당 총재인 대통령이 사실상
당론결정
·개별의원들은‘거수기’역할
·집단지도체제가 당론 의결
·의원총회가 중요 정책과 법안
최종 의결(민주당안)
공천
·사실상 대통령의 최종 낙점
·당원또는대의원대회가 후보
선출(민주당안)
대통령과 국회관계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여당을 통해 국회 장악 시도
·정당정치와 원내정치의 강화로
국회의 행정부 견제 기능 제고
송인수 기자 issong@donga.com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