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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곁에서]임신부 군함 후송

입력 | 2002-01-13 17:56:00


“선생님, 아이가 나오려고…, 도와주세요.”

지난해 11월 어느 새벽. 찢어질 듯한 목소리에 잠이 깼다. 누군가 보건지소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문을 열었더니 남편에 의지한 임신부였다. 그녀는 두 번째 출산인데다 조산기가 있어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보건지소에는 인큐베이터 등 조산아를 받아 생명을 유지할 시설이 없었다.

서둘러 응급 조치를 했다. 곧바로 상급 보건소와 면사무소, 해군 해양경찰서 등에 전화를 걸어 의료시설이 제대로 갖춰진 병원으로 후송을 부탁했다. 설상가상으로 섬의 날씨가 갑자기 나빠지기 시작했다. 비바람이 몰아쳐 바다는 섬을 집어삼킬 듯 출렁거렸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진통 간격이 점점 짧아졌다. 임신부와 보호자는 물론 나 자신도 공포에 휩싸였다.

“때르르릉.”

해군부대에서 군함을 보낸준다는 연락이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임신부의 상태를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몇 분 뒤 군함이 도착했고 임신부는 안전하게 제주도의 종합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날 밤 정상보다 한 달 빨리 세상에 나온 아기 소식을 들었다.

추자도. 제주도에서 배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인구 3500여명의 작은 섬. 의료 인프라라고 해봐야 조그만 보건지소와 공중 보건의사, 간호사가 전부인 의료 취약지역이다.

젊은 공중보건의사와 순박한 주민들은 빈약한 의료 인프라와 변화무쌍한 기상 상황에 가슴을 졸이며 생활한다. 서울과 수도권에 최신식 종합병원이 경쟁적으로 들어선다는 소식에 늘 부러운 마음뿐이다.

섬은 조용하고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지만 보건지소는 항상 환자들로 시끌벅적하다. 가벼운 감기 환자에서 폐렴 등 만성 질환자, 술에 취해 다투다가 크게 다쳐서 오는 선원까지…. 또 그날 새벽 섬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아기는 이제 예방접종을 맞으러 보건지소를 찾아온다.

처음 맞는 추자도의 겨울. 도서지역의 체계적인 응급 후송 시스템이 하루 빨리 만들어지길 바라며 추자도의 겨울이 따뜻하고 무사히 지나가길 기도한다.

허재혁(제주시 추자면 보건지소 공중보건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