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코페르니쿠스는 ‘지구는 돌고 있다’는 날벼락같은 주장을 폈다. 당장 빗발치는 반발이 있었지만 거역할 수 없는 증거가 속속 나타나 인류는 수 천년 동안의 환상에서 깨어났다.
최근 생물학에서도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주장에 비견되는 사건이 있었다. 줄기세포에 의한 세포 분화 및 장기 발생에 관한 개념의 파괴가 그것이다.
지금도 생물학 교과서에는 수정란이 배아반포 단계를 거쳐 외배엽, 중배엽, 내배엽 등 각 배엽이 분화해 장기(臟器)와 조직이 생기는데, 한 배엽의 세포가 다른 배엽의 세포로 분화될 수 없으며 또 일단 특정 세포로 운명이 결정되면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2000년 스웨덴의 조나스 프리젠 박사팀은 이같이 고정된 세포의 운명에 관한 패러다임에 정면 도전했다.
연구팀은 어른 쥐의 뇌에서 다양한 신경세포로 분화될 수 있는 신경줄기세포를 분리하고 이 세포들을 다른 쥐의 배아반포에 주입해서 자궁에 착상시켰다.
교과서대로라면 주입된 신경줄기세포는 장차 태어날 쥐들의 뇌나 신경 계통으로만 변해야 옳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 세포는 신경계, 피부 등 외배엽 장기 뿐만 아니라 내배엽, 중배엽 장기까지 형성했다. 성체줄기세포의 고정된 운명을 뒤엎는 결론이었던 것이다. 학계에서는 주입한 세포들에 또 다른 세포들이 섞여 있었을 것이라며 이 증거를 반박했으나 2001년 미국 예일대의 다이언 그라우즈 박사는 이 논란에 못을 박았다.
그녀는 쥐의 골수에서 뽑아낸 백혈구 적혈구 등 각종 혈액세포로 분화되는 조혈모(造血母)세포를 염색한 뒤 이들을 현미경 아래서 한 개 씩 분리해서 배아반포에 주입한 뒤 임신한 어미 쥐의 자궁에 착상시켰다. 그리고 여기서 태어난 쥐의 몸에서 염색된 세포들의 행방을 추적했다. 이 결과 이 세포들은 혈액세포뿐만 아니라 신체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장기로 분화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성인에게서 발견되는 줄기세포의 분화능력이 제한되어 있다는 전통적 관념을 뒤엎는 거역할 수 없는 반증이었다.
이렇듯 줄기세포 분화에 있어서의 ‘천동설’이 파괴됨에 따라 줄기세포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던 개념 또한 ‘코페르니쿠스적 변환’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난치병 치료를 위해 배아줄기세포만이 다양한 종류의 조직을 공급할 수 있는 유일한 ‘창고’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과학과 윤리가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성체 줄기세포의 개념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은 이 둘의 갈등을 풀 기막힌 열쇠인 것이다.
오일환(가톨릭대 세포유전자치료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