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금융시장이 거대한 지각변동을 겪고 있다. 상대적으로 문턱이 높은 은행 보험 등 기존의 제도권 금융기관과 연 100%에 달하는 고금리로 대표되는 사채(私債)시장의 틈새에 거대한 규모의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시장을 이용하는 사람이 늘자 캐피탈 금고 카드 신협 등에 이어 은행과 보험사들도 참여를 서두르고 있다. 시중자금이 금융기관으로 몰려들고 있지만 이를 빌려줄 대출처가 한계점에 도달한데다 소비자금융시장이 워낙 무서운 속도로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칭 ‘캐피탈’로 대표되는 소비자금융은 돈을 빌릴 때 담보를 제공할 능력이 없거나 신용자료가 없는 경우, 또는 자신의 신용도가 낮아 은행 보험 등에서 대출받기 어려운 사람이 주로 이용한다. 다만 금융기관을 이용했다가 신용불량자로 등록된 사람은 이를 이용할 수 없다.
사채시장을 이용하는 사람 가운데는 자신의 신용만으로 캐피탈 등 소비자금융을 취급하는 회사에서 연 20% 안팎의 금리로 필요한 돈을 빌릴 수 있지만 아직 이 같은 사실을 몰라 고금리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캐피탈회사는 돈을 빌려줄 때 개인의 신용도를 기준으로 대출한도를 정한다. 따라서 이전에 거래한 내용이 있거나 안정된 직업이 있으면 대출받기가 쉽다. 한국에는 아직 개인의 신용을 전문으로 조사하는 기관이 없는데다 금융기관들도 신용자료를 공유하지 않고 있다. 개인의 신용에 대한 정확한 평가자료가 없다보니 1500만명 정도가 신용등급이 없는 ‘무(無)신용자’인 것으로 업계는 추산한다. 이들은 신용불량자가 아니라 신용평가를 받아보지 않은 사람으로 은행에서는 대출받지 못한다.
이런 실정을 감안해 일부 캐피탈회사에서는 신용등급이 없는 사람에게 일단 소액을 대출한 뒤 거래내용을 보아 신용등급을 부여하고 있다. 또 비슷한 과정을 통해 신용이 나쁜 이용객의 신용등급을 개선시키기도 한다. 소비자금융업체들이 ‘없는 신용을 창출하고, 무너진 신용을 복원하는’ 기능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캐피탈은 98년 1월 새로 만들어진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따라 그 이전에 개별법 적용을 받던 신용카드, 할부금융, 리스, 신기술금융 등을 포함한다. 이런 넓은 의미에서는 73년 설립된 산업은행 계열 산은리스가 원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소비자에게 할부금융을 포함해 신용대출을 해주는 좁은 의미의 캐피탈은 90년대 후반에 생겨났다. 외환위기 이후 제때 봉급을 받지 못하거나 기존 금융기관이 연쇄적으로 이자율을 올리는 등 가정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돈을 급하게 구하는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때 캐피탈회사가 대체로 1000만원보다 적은 소액의 급전을 담보없이 빌려주다보니 이용객이 늘어나는 계기가 됐다. 한편 삼성캐피탈은 소비용 자금이 아니라 서민에게 미래를 준비하는 생활자금을 지원한다는 의미에서 ‘생활자금융’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김상철기자 sckim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