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 임기제의 장애물은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있다.”
신승남(愼承男) 전 검찰총장이 ‘이용호(李容湖) 게이트’에 연루된 동생 승환(承煥)씨의 구속에 책임을 지고 취임 8개월만에 사퇴함으로써 임기 2년을 채우지 못했다.
검찰총장 2년 임기제는 법무부가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엄격한 검찰권 행사를 위해 1988년 12월 검찰청법을 개정해 도입한 것. 총장 임기제에 따라 검찰총장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정치권의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2년 동안 임기를 보장받으며 소신껏 검찰을 지휘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러나 총장 임기제는 그동안 정권의 압력과 필요에 따라 훼손되곤 했다. 신 전 총장은 ‘외풍(外風)’이 아니라 검찰 내부 문제 때문에 임기를 채우지 못한 특이한 경우로 기록되게 됐다.
이 때문에 검찰 후배들은 “총장 임기제를 지키기 위해서는 외풍에 견디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부 기강 확립과 단속도 중요하다는 교훈을 남겼다”고 말했다.
검찰총장 임기제가 도입된 이후 총장을 지낸 9명 중 임기를 채우지 못한 총장은 30대 신 총장을 포함해 24대 김두희(金斗喜), 25대 박종철(朴鍾喆), 27대 김기수(金起秀), 28대 김태정(金泰政)씨 등 5명으로 절반이 넘는다. 이들 중 2명은 법무부장관으로 임명돼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김두희 전 총장은 93년 3월 당시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이 법무부장관으로 발탁하는 바람에 3개월 단명 총장으로 기록됐다. 그는 장관으로 영전하면서도 총장으로서 뜻을 펴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박 전 총장은 김영삼 정권 초기 사정(司正)의 서막을 연 ‘슬롯머신 사건’ 수사와 재산 공개 파동 때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는 등의 이유로 권력 핵심과 갈등을 빚다가 6개월만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총장직을 물러났다.
김기수 전 총장의 경우 97년 5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현철(賢哲)씨를 구속한 데 따른 부담 등으로 그 해 8월 임기 만료를 한 달여 앞두고 사퇴했다.
김태정 전 총장은 99년 5월 임기 만료 3개월을 앞두고 법무부장관으로 임명돼 검찰을 떠났다. 그러나 그는 다음달 초 당시 진형구(秦炯九) 대검 공안부장의 ‘조폐공사 파업유도’ 발언으로 장관직에서 물러났으며 그 해 12월 옷 로비 사건 사직동팀 보고서 유출 사건으로 구속되는 등 비참한 상황을 맞았다.
총장 임기제 도입 이전에도 단명 총장들이 적지 않았다. 81년 10월 서울지검 특수1부가 벌였던 ‘저질연탄 사건’ 수사는 당시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이 칭찬까지 했으나 대통령 인척을 통한 업자들의 진정으로 허형구(許亨九) 당시 총장이 재임 9개월만에 중도 하차했다.
김종률(金鍾律) 변호사는 “검찰총장 임기 보장에는 다른 권력기관에 대한 수평적 견제와 엄격한 검찰권 행사라는 두 가지 법 제정 목적이 모두 포함돼 있다”며 “특히 검찰권 행사라는 내부 문제에 대해 더욱 엄격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