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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포커스]분사기업들 "돈되면 뭐든지…"

입력 | 2002-01-15 17:44:00


한국의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7월 ‘대기업 분사(分社) 1호’ 테이프를 끊으며 현대그룹에서 떨어져 나온 중소 컴퓨터 제조업체 현대멀티캡. 그때까지 매년 100억원 안팎의 적자를 내던 이 회사는 분사 다음해인 99년 곧바로 77억원의 흑자를 내 주위를 놀라게 했다. 2000년에는 분사 이전보다 매출이 배나 늘어난 2900억원에다 흑자도 80억원이었다.

그러나 요즘 이 회사 간부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지난해 실적을 잠정집계한 결과 30억∼40억원가량의 적자가 예상되기 때문. 지난해 PC업계가 30% 이상 시장이 줄어들 정도로 불황에 빠진 것을 감안하면 그나마 ‘선방(善防)’한 것이고 매출액 대비 적자 규모도 큰 편은 아니다. 하지만 주주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직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올해는 어떤 방식으로 다시 이를 만회할지 골머리를 썩고 있다. 임원들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실적개선에 큰 관심을 보인다.

▽살아남기 위한 안간힘〓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대기업들은 앞다퉈 ‘선택과 집중’ 전략을 세웠다. ‘선택’에서 제외된 ‘주변부 사업’은 찬밥대우를 받으며 사실상 쫓겨나다시피 떨어져 나왔다. 사내벤처형 분사기업이 아니라 구조조정 차원에서 실시한 ‘떨어내기형 분사기업’만 해도 삼성그룹이 300여개, LG그룹이 100여개나 된다.

분사된 업종은 대부분 비전이 없거나 수익성이 저조한 부분. 홀로서기가 쉬울 리가 없다. 하지만 이 때문에 각 분사기업의 생존전략도 그만큼 필사적이다.

격렬한 반대 끝에 지난해 7월 한국통신(현 KT)에서 떨어져 나온 114 안내전화 서비스회사 KOIS(서울 경기 강원지역)와 KOID(그외 지역). 최근 ‘우선안내 서비스’라는 색다른 서비스를 선보였다.

“아무 렌터카 회사라도 알려주세요”라고 하면 계약된 렌터카회사의 전화번호를 우선적으로 소개해주는 고수익 사업이다. 이 밖에 단전 단수예고 여행 레저안내 등 생활정보를 제공하는 특수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 KOIS 마케팅팀의 지영수 부장은 “이왕 떨어져 나온 이상 돈이 되는 사업이라면 무엇이든지 해 살아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의 김준식 부장은 “분사 직후 경기에 따라 업종별로 희비가 엇갈렸지만 대체로 절반 이상이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본다”며 “올해가 그룹이 지원을 약속한 3년의 마지막 해여서 확실히 홀로서기를 하느냐 마느냐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해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회사업무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분사기업의 또 하나 공통점은 ‘노사갈등’을 별로 겪지 않는다는 점이다.

분사기업들은 대부분 종업원지주제 형태다. 직원들이 퇴직금으로 주식을 사 배수진을 친 셈이다. 이 때문에 임원만이 아니라 직원도 ‘우리사주 주가가 떨어지지나 않을지’, ‘계속 사정이 안 좋아지면 일자리는 어떻게 될지’를 진지하게 고민한다. 분사 이전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현대멀티캡 김용일 상무는 “과거에는 회사가 매년 적자가 나도 월급이 줄지 않고 해고도 없었으니 걱정하는 사람은 본부장급 이상 몇 명뿐이었다”며 “이제는 직원들이 먼저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물어올 정도로 의식구조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위기를 기회로〓99년 3월 LG전자의 금형사업부가 떨어져 나온 경북 구미시의 나라M&D. 직원들은 요즘 분사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 회사 재경팀의 김영주 과장은 “지난해 6월 회사가 코스닥에 등록되면서 주가가 4배 이상 올라 직원들이 짭짤한 재미를 봤다”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분사기업들에 미안할 정도”라고 했다. 현대멀티캡도 99년말 코스닥에 상장하면서 평사원들도 1억∼2억원 가량의 수익을 챙겼다. 그동안의 깎인 봉급을 만회하고도 남는 수준이었다.

또 분사 이전 그룹 내에서는 2, 3등 대우를 받았지만 분사하면 그 분야에서 다른 회사와 겨뤄 1등을 차지할 수도 있다. 모든 역량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구조조정 전문컨설팅회사인 네오플럭스캐피탈의 김용성 대표는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스(GE)가 내부업무를 떼어내 아웃소싱으로 돌리면서 성공한 사례가 많다”며 “해당 직원들은 심각한 고용불안을 느낄 수도 있지만 인적, 기술적 자원이 외부에서 수혈되고 직원들의 의지가 달라지면서 인센티브가 더 많이 돌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진단했다.

김광현기자 kk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