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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상일씨 책,"폭탄주엔 접대-조직 문화 녹아있어"

입력 | 2002-01-16 17:11:00


“폭탄주를 왜 마시느냐 하면 술을 덜 마시기 위해 마신다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최근 ‘폭탄주, 그거 왜 마시는데?’(기문사 간)라는 책을 낸 이상일(46)씨는 “폭탄주에는 한국의 접대문화와 조직문화, 집단의식 등이 녹아 있다”고 말했다.

폭탄주는 정치인 공무원 기업인 군인 경찰 검찰 언론인 체육인 연예인 등 사회 각계에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 이제는 주한 외국인들까지 한국 사람들과 친해지려면 폭탄주를 마셔야 하는 줄로 알 정도다.

그런데 폭탄주 예찬론자들 중 많은 사람이 “술을 덜 마시기 위해 폭탄주를 마신다”고 한다. 특히 경영자 관리자 등은 회식 자리에서 많은 부하 직원들을 일일이 상대하기 어려워 ‘공평하게’ 폭탄주를 돌리고, 빨리 마시고 일찍 파하기 위해서 폭탄주를 마신다는 것이다.

책을 쓰는 과정에서 수십명을 인터뷰했는데 김진선 예비역 육군대장(63) 같은 이는 “나한테는 술이나 물이나 콜라나 다 똑같다”고 말할 정도로 술을 잘 마신다고 했다. 이씨가 만난 사람중에 최고수(最高手)는 천보성 전 LG프로야구 감독. 한자리에서 폭탄주 50잔을 마셨다고 한다.

반면 술 못마시는 사람의 고통에 대해서도 실감하게 됐다고 한다. ‘술을 못 마시면 출세할 생각 마라’‘조직의 단합을 저해하는 사람’등 갖가지 강압으로 ‘목숨을 건’ 폭탄주를 마시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이다. 이씨 자신은 폭탄주 3∼5잔 실력으로 보통 수준.

이 책에는 정통폭탄주 수소폭탄주 중성자탄주 드라큘라주 박치기주 비아그라주 등 80여가지 폭탄주를 소개했다.

폭탄주의 원조에 대해 이씨는 ‘군대 유래설’을 부인했다. 김진선 장군을 포함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처음 폭탄주를 마신 시기를 80년대 후반으로 잡고 있는데 박희태 한나라당 의원은 검찰 시절인 1983년에 마셨다는 것. 외국에도 1900년대 광부들이 마시던 보일러메이커, 스웨덴의 서브마린(submarine) 등 폭탄주와 유사한 칵테일이 있다. 폭탄주의 이름도 집단에 따라 운명공동주 다이너마이트주 러브샷 등 다양하게 부른다.

폭탄주를 둘러싼 해프닝과 사고도 많은데 그는 99년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을 가장 큰 것으로 꼽았다. 다른 사건은 개인적 망신에 그쳤지만 이 사건은 향후 노동개혁 자체를 후퇴시키는 전환점이 됐다는 분석. 폭탄주에 얽힌 여러 비사(秘事)가 책에 나와 있다.

이씨는 매일경제신문과 중앙일보에서 주로 경제분야에서 일했으며 현재 대한매일 논설위원이다.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