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85년 나는 액션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충무로 주변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당시 영화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던 충무로 스타 다방을 매일 출근해 혹시 감독 눈에 띄지 않을까하는 장밋빛 기대 속에 하루를 보냈다.
어쩌다 한 번씩 엑스트라로 출연하기를 2년, 드디어 1987년에 첫 단역을 맡았다. 문여송 감독의 영화 ‘그대 원하면’에서 당시 하이틴 스타였던 김혜선씨를 겁탈하려다 전화기로 머리를 맞는 역할이었다. 마음이 약한 김혜선씨는 실감나게 때리는 연기를 하지 못해 수십차례 NG를 냈고 급기야 감독님이 시범을 보인다며 세게 때리자 나는 기절 직전까지 갔다.
단역과 연출부 생활을 전전하던 나는 89년 강우석감독을 만나면서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다. 강 감독님은 처음 내 얼굴을 보더니 “박중훈 스타일이네. 연기 한 번 해봐”라고 말했고 곧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시나리오를 보여주시며 “무슨 역을 하고싶냐”고 물으셨다. 감히 주연은 꿈도 못꾸고 주인공의 친구 역을 골랐다.
당시 주인공은 김민종으로 내정됐고 그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마음이 잘 통해 “나중에 ‘한국판 영웅본색’을 찍자”며 의형제까지 맺었다. 그러나 리허설을 끝내자 감독님은 나와 김민종의 역할을 바꿨다. 처음 주연을 맡았다는 기쁨도 잠시, 김민종은 상심한 나머지 잠적했고 나는 “네가 돌아오지 않으면 나도 포기하겠다”는 의지로 김민종을 설득했다. 그 때 내마음은 100% 진심이었다. 결국 내 진심이 통했는지 영화는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
데뷔 초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내가 이름을 바꾼 사실을 알 것이다. 91년초만해도 나는 ‘허석’이라는 본명으로 활동했다. 누가 이름을 함부로 짓는가’라는 책에서 접한 내용이 마음에 와닿았고 무엇보다 나보다 먼저 개명한 동생이 내게도 개명을 권했다. 개명 덕분인지 그 뒤로 불같던 성격도 부드럽게 바뀌었고 좋은 역할을 많이 맡아 제법 유명세를 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