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 바람이 한창 불고 있는 요즘 정치에 일생을 걸어 보겠다는 사람에게 ‘리더십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한다면 열이면 열 사람 모두 대단히 열 받을 것이다. 한창 세몰이에 나선 대선주자 누구도 ‘주위에 지지자들이 이렇게 몰려드는데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다시 한번 열 낼 것이 분명하다. 자신이야말로 나라를 제대로 이끌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라고 모두 자임하는 판국이니 그럴 법도 하다. 여기서 정치적 리더십의 요체가 무엇이고, 요건은 무엇인지를 논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여기저기서 사람들을 끌어모아 한 줄로 세우고 자신을 따르라는 골목대장식 리더십으론 안 된다는 점이다. 리더십이란 말이 일견 화려하고, 그럴듯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속으로 들어가 보면 곳곳에 얼마나 많은 함정이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지금 한국사회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불거지고 확산되는 각종 권력형비리도 이와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
▼정권 핵심내의 온정주의▼
비리의혹의 뿌리가 모습을 드러내고, 김대중 정권의 청와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의 주연들이 하나 둘 퇴장당함으로써 대통령의 리더십은 크게 손상됐다. 김 대통령은 연두기자회견에서 이들의 비리연루 의혹에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 국민에게 죄송하다고 했다. 대통령으로서 충격 속에 분노를 느꼈겠지만 잇단 권력형비리사건에 신물이 난 시민입장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통령도 국민적 분노의 대상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이다. 대통령이라 한들 아랫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벌이는 일을 무슨 수로 일일이 감독, 점검하겠느냐고 하겠지만, 그렇다면 리더십이란 왜 필요한 것인가.
한 정파의 지도자가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리더십을 넓혀오는 과정엔 개인적인 권위 말고도 추종세력의 헌신적 기여를 무시할 수 없다. 더욱이 대통령이 된 후 국정운영의 리더십은 다양한 사회적 이익집단을 아우르기 위해서도 측근 핵심세력의 도움이 절실하다. 이런 의미에서 대통령의 리더십은 또 한편으론 측근 핵심세력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정치학자들도 많다. 이 과정에서 측근이니 가신이니 하는 집단이 형성돼 온 것이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측근 핵심세력의 출신이 지역적으로 집중된 김 대통령으로선 이런 현상이 유별났다.
권력유지를 위해선 대통령도 핵심세력과 거리를 두고 있을 수는 없고, 일체감을 부여하면서 이들을 이끌어 나가는 편이 정권의 안전운행을 위해 좋은 것도 현실이다. 게다가 권력이란 것이 본래 ‘걸치기’를 좋아하고 ‘서로 엮기’를 즐겨하는 속성을 가진 것도 리더십유지와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권력형비리의 함정이 있다.
대권을 쟁취했지만 소수정권과 지역정권이란 부담을 지고 출발한 현 집권세력의 최대 과제는 효율적 리더십의 확보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통령주변 핵심세력의 결속이다. 핵심정치는 폐쇄적이고, 밀실화되면서 정치적 동지는 어느새 ‘우리 식구’가 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리더십의 온정주의가 뿌리내리기 시작한 것 아닌가. 적어도 비리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측근들은 권력내부의 온정적 분위기를 자신에게 편리한 쪽으로 해석한 것이 틀림없다. ‘대통령을 위해 일하는데 이 정도쯤이야’ 했을 법하다. 권력을 운용하는 리더십의 또 다른 속성 중 하나가 ‘모호성’이다. 굳이 매사를 명확히 구분지어 불필요하게 반대세력을 촉발시킬 필요가 없다는, ‘좋은 것이 좋다’는 논리다. 이러한 리더십의 모호성이 온정적 분위기와 어우러질 때 비리유발의 개연성은 대단히 커진다. 권력형 비리가 싹트는 것도 이때다.
▼‘인사 實勢’ 지금 어디있나▼
훗날 비리연루설이 나돌 사람임을 알았다면 김 대통령은 당연히 그들을 대통령 수석비서관자리에 앉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을 핵심세력권에 끌어들인 더 핵심적 위치의 사람은 누구인가. 권력의 기반은 국가운영에 필요한 모든 자원의 독과점에 있고 그중에서도 핵심적인 것이 정보장악권이다. 그렇다면 청와대 국정원 검찰 등 핵심세력 구축과정에서 사람을 거르는 막강한 정보권은 낮잠을 잤단 말인가. 특히 청와대 ‘대통령 사람들’의 비리연루가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인선시스템에 중대한 장애가 발생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 아닌가. 아니면 시스템을 압도하는 핵심실세들의, 추천을 위장한 입김 때문인가. 그런데 그들은 지금 어디서 몸을 사리고 있는가.
정치판에서 리더십이란 하나의 거대한 ‘연출’인 셈이다. 현 정권은 여기에 너무 몰입했고, ‘준비된 대통령’이라 했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서둘러 리더십을 세워보려는 욕심에서, 특히 인사정책에서 ‘퍼 담기’를 되풀이했으나 그 결과는 단방약으론 국정을 치유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는 비싼 값을 치르며 그것을 배우고 있다. 정치지도자가 일찍이 깨닫지 못한 탓으로 아직 권력형비리에 휘말려 있는 것이다.
논설실장 ki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