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중앙정보부 남산 대공분실에서 간첩 혐의로 조사를 받다 숨진 서울대 최종길(崔鍾吉) 교수는 심한 고문을 받고 이미 숨진 뒤에 건물 밖으로 던져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김형태(金炯泰) 제1상임위원은 18일 발간되는 신동아 2월호에 기고한 ‘중정은 최 교수를 살해하고 자살로 조작했다’는 글에서 최 교수가 타살됐음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들을 제시했다.
김 위원은 조사 결과 최 교수가 간첩이라는 주장은 중앙정보부가 꾸며낸 것이며 중정은 최 교수 사후 각종 서류를 위조하는 등 은폐조작을 시도했다는 당시 수사관들의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은 17일 “최 교수 의문사 사건을 여러 언론이 다뤘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사실을 호도 하려는 시도조차 있었다”며 “국민이 사건의 진상과 함의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글을 썼다”고 밝혔다. 김 위원의 글을 요약 정리한다.
▽시체의 ‘사후 손상 흔적’〓최 교수 시체 부검사진을 면밀히 조사한 국내외 법의학자들은 위원회에 ‘최 교수의 왼발 상처와 앞머리 골절, 양팔 골절, 골반골 골절은 다른 상처들과 발생한 시간에 뚜렷한 차이가 나며 그 차이는 생전과 사후로 구분된다’는 의견을 보내왔다.
즉 이들 상처는 최 교수가 사망한 후에 생긴 것이라는 소견이다. 따라서 추락자에게 흔히 발견되는 골반골 골절 등이 최 교수 사후에 생겼다는 것은 최 교수가 이미 숨진 상태에서 건물 밖으로 던져졌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한편 부검의는 사건 당일인 10월 19일 오전 궁정동 안가(당시 이후락 중정부장의 집무실이 있던 곳)로 불려가 (자신이 부검해야 할 시체가) “이곳 3층에서 떨어져 자살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위원회에서 진술해 중정 고위층이 최 교수의 사인을 자살로 규정했다는 의혹을 드러냈다.
▽고문 여부 확증〓최 교수의 부검사진을 검토한 대다수 국내외 법의학자들은 엉덩이 부분의 상처와 다리 오금 부분의 상처는 시반(屍斑)이 아닌 피하출혈로 고문의 명백한 증거라고 진술했다.
최소한 길이 1m 내외의 각목으로 심한 매질을 당했고 ‘통닭구이’ 고문을 자행한 것이 틀림없다는 소견이었다.
▽사후 공문서 조작〓당시 수사관 C씨는 “긴급 구속장, 피의자 신문조서, 압수수색영장, 첩보보고서, 수사보고서 등 송치에 필요한 일체의 서류는 최 교수 사후에 작성된 것”이라고 진술했다.
또 다른 수사관 E씨는 “허위로 작성한 서류에 서명하고 도장을 찍으라는 지시를 당시 중정 고위 간부 A씨가 했고 또 다른 고위간부 D씨의 묵인 하에 최종길을 간첩으로 만들었다”고 진술했다.
한편 사건 당일 새벽 사건 현장에서 현장검증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관 G씨 등은 “사건 관련자 중 아무도 현장검증에 참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현장 검증을 목격한 적도 없다”고 위원회에서 밝혔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