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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노트]왕건의 빛나는 프로정신

입력 | 2002-01-18 14:24:00


2001년 KBS 연기 대상은 대상을 놓고 ‘왕건’역의 최수종과 ‘견훤’역의 서인석이 막판까지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대상을 차지한 최수종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모든 스태프에게 영광을 돌렸다. 비록 대상을 놓치긴 했지만 서인석 역시 대상을 받기에 전혀 손색이 없었다.

‘태조 왕건’은 왕건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진 드라마였다. ‘왕건’ 캐릭터는 최수종이라는 연기자 개인의 이미지와 성품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사실 ‘태조 왕건’역으로 최수종이 낙점되었을 때 일반 시청자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과연 곱상한 외모의 그가 카리스마 넘치는 왕을 그려낼 수 있을까 하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제작진은 최수종을 통해 인화력의 화신 ‘왕건’을 형상화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자기배역에 충실하고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프로정신’을 갖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의 성실함과 인간적인 넉넉함을 보여주는 몇가지 일화가 있다.

공산 전투에서 대패한 왕건이 백제군졸의 옷으로 갈아입고 사지를 탈출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의 일이다. 계곡에서 뛰어 내려 어딘가로 도망가는 장면이었는데, 위험한 촬영임에도 대역연기를 한사코 마다했고 두세번 촬영만에 연출의 ‘O.K.’ 사인이 떨어졌다. 그러나 정작 최수종은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재촬영을 요구했다.

촬영이 마무리되는 순간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비록 TV에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최수종은 2주간 발목에 깁스를 한 상태로 지내야 했다. 그의 성실과 철저한 프로근성이 부른 사고였다.

또 한 번은 ‘태조 왕건’의 진행(FD)을 보는 S의 결혼식날이었다. 일요일 더군다나 전주의 예식장에 모습을 나타낸 최수종을 보러 결혼식 하객들은 난리를 피웠고, S는 결혼의 기쁨보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먼길을 와 준 최수종에 대한 고마움으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최수종은 2년이 넘는 ‘태조 왕건’의 힘든 일정 속에서도 연습 및 촬영 시간을 단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다. 선배에게 항상 깍듯하게 예의를 지키고 개인의 이익보다는 프로그램을 먼저 배려하는 연기자다.

본인은 연기자 최수종에게서 우리 시대의 진정한 인간 ‘왕건’을 보았다. 그는 화면 안에서 뿐만 아니라 화면 밖에서도 ‘태조 왕건의 덕’을 갖춘 인물이었다.

김종선(KBS ‘태조 왕건’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