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버트 베이어의 '독일 전시' 전람회 안내책자의 포토몽타주(1936)
의미의 경쟁 : 20세기 사진비평사/리차드 볼턴 엮음/451쪽 2만5000원 눈빛
주류 사진사(寫眞史)는 사진의 사회적 기능보다는 주로 예술사진 혹은 예술을 위한 형식주의에 밀착되어서 논의돼온 면이 컸다. 사진에 담긴 의미의 정치성까지 폭넓게 조망하는 사진사를 비평적으로 다룬 대표적인 책이 최근 번역된 ‘의미의 경쟁’이다.
미국 대학의 사진비평과정에서 주요 텍스트로 읽히는 이 책은 로잘린드 크라우스를 비롯해 오늘날 현대사진과 현대미술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이론가 14명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이들 필자는 사진의 사회적, 경제적 관계는 물론이고, 근현대를 관통해왔던 제도적, 사상적 부분들이 사진 속에 어떻게 투영되고 있는지 거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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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은 “미적 행위의 사회적 결과는 과연 무엇인가”를 논하는 원론적 접근에서 출발한다.예술사진의 역사적 구조를 파악하고자 미술관이 어떠한 경로로 사진을 예술의 한 영역으로 확보하는지(더글라스 크림프), 미술관이 어떤 방식으로 예술의 의미를 통합·조정하는지(크리스토퍼 필립스), 예술과 청중 사이에 사회적, 정치적 의미가 어떻게 드러나는지(밴저민 부클로), 정치적 수단이었던 아방가르드 형식주의가 어떤 경로를 통해 미적 스타일로 자리잡는 지를(애비게일 솔로몬-고도우) 말하고 있다.
이어지는 각론에서 역사적으로 사진이 담지해온 성차별, 권력관계, 정치학 등의 만만치 않은 주제를 다룬다.
먼저 ‘사진은 성별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사진제도 안에서 여성의 문제를 파악하고자 다이안 아버스의 죽음이 어떻게 신화화됐는지(캐슬린 로드), 사진의 형식주의가 자연을 어떻게 여성화시켰는지(데보라 브라이트), 잡지 사진이 여성들에게 어떤 식으로 소비를 조장했는지(샐리 스타인), 성적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사진이 어떻게 이용되었는지를(잔 지타 그로버) 흥미롭게 살핀다.
‘사진은 어떻게 계급과 국가이익에 부합하는가’라는 주제에서는 사진이 계급과 국가의 이익을 위해 부합했던 바를 파악하고자 정권에 불리한 뉴스에 대해 사진이 어떻게 효과적으로 주의를 돌려주었는지(캐롤 스콰이어즈)가 흥미롭다. 또한 뉴스 사진이 국가와 국가가 겪고 있는 일에 대해 어떻게 영향을 미쳐왔는지(에스터 패라다), 사진이 상품생산과 관련하여 어떤 관계를 가져왔는지(리차드 볼턴)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진적 진실의 정치학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 과거 사진의 진실과 증언이 어떻게 왜곡되어졌는지를 파악하고자 초기사진들이 예술적 목적이 아니라 지형학 혹은 기록 목적으로 촬영되었음을 보여주고(로잘린드 크라우스), 다큐멘터리 사진에서도 수많은 허구와 신화적 치장이 있었다는 사실(마사 로슬러)과 사진은 용도에 따라 대상을 죽이고 살리는 양면성을 가졌음(앨런 세큘러)을 설득력있게 밝히고 있다.
결국 “사진이 사회 속에서 어떤 의미로서 존재해야 하는가”를 묻는 이 책은 거꾸로 사진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접근 없이 다가섰을 때 얼마나 위험스러운 매체인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김우룡 옮김, 원제 ‘The Contest of Meaning’(1992)
진동선 사진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