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왼쪽)가 11일 그의 이름을 새긴 동판에 서명하고 있다. 이 동판은 할리우드 코닥극장의 벽에 걸렸다.
복싱계의 ‘살아 있는 전설’ 무하마드 알리가 17일로 환갑을 맞았다.
81년 퇴행성 신경질환인 파킨슨병에 걸려 손과 안면이 떨리고 말도 더듬지만 그의 인기는 여전하다. 그의 60세 생일을 맞아 로스앤젤레스시는 17일을 ‘알리의 날’로 선포했으며 미국 3대 공중파 방송 중 하나인 CBS는 16일 축하 특집쇼를 1시간 동안 내보냈다.
11일에는 아카데미 영화제 시상식장인 할리우드 코닥극장의 한쪽 벽에는 그의 이름을 새긴 동판이 걸리기도 했다.
알리는 42년 켄터키주 루이빌 출생으로 60년 로마올림픽에서 복싱 헤비급 금메달을 딴 뒤 프로로 전향, 64∼67년과 74∼78년 두 차례 세계챔피언을 지냈다. 그는 프로생활 동안 103회 경기에서 5번만 패하는 신화적인 기록을 남겼으며,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자신의 말처럼 경쾌한 발놀림과 날카로운 펀치로 전 세계 권투팬들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이제 그는 신실한 이슬람교도로서, 파킨슨병과 싸우는 불굴의 투사로서 존경받고 있다.
그는 60년 올림픽 우승 직후 한 식당에서 백인 깡패에게 모욕을 당한 뒤 금메달을 오하이오강에 던져버렸다. 흑인으로서의 자의식과 민권 의식에 눈뜨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
알리는 이후 이슬람교로 개종하고 본명인 ‘캐시어스 클레이’도 이슬람식 이름인 현재 이름으로 바꿨다. 그는 67년 세계챔피언 타이틀을 박탈당하면서도 종교적 신념에 따라 베트남전 징집을 거부하기도 했다.
그는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 성화 봉송 최종 주자로서 떨리는 손으로 성화에 점화해 전 세계인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기도 했다.
알리는 98년에는 유엔평화사절로 임명돼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인권을 위한 자선모금활동을 벌였으며 99년 영국 BBC방송에 의해 ‘21세기 최고의 스포츠인’으로 선정됐다.
알리는 세 번째 부인 로니 여사와 미시간주 베리멘스프링스의 한 농장에 살면서 인종과 종교 간 화합을 위한 각종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그는 9·11테러 직후 희생자들을 위한 모금 활동에 앞장섰으며 “이슬람은 폭력이 아닌 평화의 종교”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의 얼굴과 손은 떨리지만 그의 정신은 전혀 흔들림이 없다.”
CBS 특집쇼를 제작한 PD 조지 스칠래터의 말이다.
선대인기자 eodl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