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공부를 정식으로 하게 돼 무엇보다 기쁩니다. 축구선수가 되려던 꿈을 그림에 마음껏 담고 싶어요.”
19일 경북 경산시의 대구대 회화과에 최종 합격한 전신마비 신체장애인 박정(朴政·28·경기 김포시 고촌면)씨.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선수로 뛰었던 박씨는 강릉중을 거쳐 91년 서울 경신고 축구선수로 입학했으나 뜻밖의 사고로 목을 다치는 바람에 얼굴을 뺀 전신이 마비되고 말았다.
“몇 번이나 자살충동이 생겼지만 이대로 인생을 끝내기에는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눈이 보이고 귀가 들리고 입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박씨는 이후 복지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미술대생에게서 그림을 배우면서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구필(口筆)화가로 새 삶을 준비했다. 그는 붓을 입에 물고 그려야 하기 때문에 입안이 헐고 피가 나는 고통 속에서도 그림에 몰두해 2000년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입선했다.
박씨가 좌절을 이겨낸 데는 부인 임선숙(林善淑·37)씨의 따뜻한 사랑이 결정적인 힘이 됐다. 98년 서울신학대 사회복지학과에 다니던 임씨는 복지시설에서 박씨를 만난 뒤 99년 결혼했다.
임씨는 “몸이 불편한데도 매사를 감사하게 생각하는 남편의 태도에 마음이 끌려 혼자 살려던 생각을 버리고 결혼했다”며 “24시간 옆에서 돌봐줘야 할 정도로 남편이 불편하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대학 측은 박씨 부부를 위해 교수아파트를 제공하고 4년 동안 장애인복지장학금을 주기로 약속했다.
박씨는 “축구선수로 뛸 수는 없지만 아직도 축구선수의 꿈을 접지는 않았다”며 “월드컵이 열리는 날 꼭 경기장에 가서 한국응원단의 얼굴에 태극기를 그리는 페이스페인팅을 할 작정”이라고 말했다.
대구〓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