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TV 사극 주인공인 왕건, 명성황후, 문정왕후의 인기가 드높다. 모두 한 시대의 방향을 좌지우지했던 인물들이다. 그래서 인기 절정인 모양이다. 우리나라 보통 사람들의 통치자에 대한 기대 심리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의 통치자들은 거꾸로 인기가 바닥인 모양이다. 왜 그럴까.
전통시대의 통치자들도 요즘 TV사극에서의 높은 인기와 달리 실제 당대에서는 인기가 바닥이었을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았다.
문정왕후는 임금인 명종을 여염집 어머니가 어린애 다루듯했다 하여 비판받지만, 왕건의 경우는 모든 사람이 다 알 수 있도록 투명하게 세금을 거두어야 한다는 ‘취민유도(取民有道)’라는 말 한마디를 실천해 인기가 높았다. 동양에서 존중해 온 ‘덕에 의한 정치’, 곧 ‘덕치’를 실천했다는 말이다.
▼덕치의 실천이 정치▼
‘덕치’는 “백성을 법령으로 인도하고 풍속을 형벌로 통일하면, 백성들이 법망을 피하기는 해도 수치심은 없어진다”는 공자의 말에 잘 나타난다. 법 조문만 강조하면, 법 규정에서 빠져나가는 수많은 도덕 규범들이 무시된다는 뜻이다.
맹자는 사람답게 하는 ‘도덕’에다 부끄러움을 안다는 ‘정의’를 덧붙여서 ‘인의’에 바탕을 둔 왕도정치를 제창했다.
주자는 “자신을 도덕과 정의로 수양한 자만이 남을 다스릴 수 있다”는 수기치인(修己治人) 정치론에다 모든 일은 명분을 바르게 해야 한다는 정명론(正名論)을 덧붙였다.
사대부는 먼저 ‘어른’이어야 한다. 지위가 높거나 나이가 많다고 해서 어른은 아니다. 정말 어른은 도덕 군자의 체험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그보다 더 높은 어른은 세상이 나아가는 도리를 설명하는 성인의 체험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또 그보다 더 높은 어른은 백성의 체험을 제대로 설명함으로써 하늘의 뜻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진정한 어른에 대한 이야기는 조선왕조 9대 임금인 성종 때의 에피소드에서 잘 나타난다.
성종이 병이 나자, 어머니 왕대비가 성리학을 교육하는 최고 학교인 성균관 안의 벽송정에 굿판을 차리고 치유를 기원했다. 그때 공부하던 한 성균관 유생이 무리를 이끌고 나와 무당을 매질해 내쫓았다. 왕대비가 크게 노하여 임금의 병환이 나은 뒤에 왕에게 고하니, 왕은 그 유생에게 벌을 내리는 대신 특별히 술을 내려 주었다고 한다. 누가 진정 어른인가. 왕실의 어른인 왕대비가 아니라 일개 유생인 이목(李穆)이라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형님 정약전에 대해 “상스러운 어부들이나 천한 사람들과도 패거리가 되어 친하게 지내며 교만을 부리지 않았기 때문에, 섬사람들이 더욱 기뻐해 서로 자기 집에만 있어 달라고 했다”라고 썼다.
사대부 아닌 통치자의 경우는 어떠했을까.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어떤 임금의 평가 중에 “임금은 (주변 신하들에게만 베풀고) 일반 백성들에게는 실제로 베푼 것이 없건만, 일반 백성들은 그래도 임금의 죽음을 슬퍼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 임금이 통치자지만 어른은 결코 아니었다는 평가다.
반면 큰 어른으로 인정받은 정조는 ‘성인 중에서도 성인’이라 기록되어 있다. ‘통치자도 민과 한 핏줄’이라는 뜻이 담긴 ‘동포(同胞)’론을 좋아하고 이를 실천했기 때문이다.
▼통합은 없고 밀어붙이기만▼
그는 말년에 ‘군주는 만 개의 하천을 비추는 밝은 달’이라고도 했다. 곧 군주는 모든 시냇물에 비치는 달빛 같은 아버지이자, 모든 사람을 자기와 한 핏줄로 생각하는 스승이라는 통치자론이었다. 정조의 깊은 지우(知遇)를 받았던 정약용이 ‘통치자는 아래에서부터 추대되어 위로 선출되었다’고 ‘탕론(湯論)’에 쓴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바로 덕치의 요체다.
지금 우리 사회는 통합의 ‘정치’는 없고 밀어붙이면 된다는 식의 ‘통치’만 있을 뿐이다. 이는 식민지시대 이래의 천박한 정치론이다.
정치는 도덕과 정의가 아니라 힘이라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도덕, 정의, 명분을 존중하는 덕치의 전통 속에는 가치·영향력·공동체의식·공존지향 등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덕목들이 담겨 있다.
급변하는 시기의 정치란, 한 시대의 상식을 넘어서서 현실을 파악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전통사회에서 덕치로 달성하려 했던 ‘큰 어른으로서의 정치인’이라는 사고방식을 실사구시 차원에서 현실에 적용해 볼 필요가 있다.
박광용 가톨릭대 교수·국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