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업원의 김정호 부원장은 1월 14일자 본란에 ‘경영판단의 책임한계 명확해야’라는 글을 기고했다. 이 글은 선뜻 논박하기 어려운 가치중립적인 제목을 붙이고 있지만 실상은 최근 삼성전자 임원들에게 배상책임을 물은 판결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사법부의 판결을 제3자가 비판하기 위해서는 판결에 이른 사실관계를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중립적으로 평가하려는 자세가 필요하지만 이 글은 이 중 어느 하나도 갖추지 못한 것 같다.
우선 김 부원장이 언급한 ‘이천전기 사건’이란 삼성전자가 1997년 이천전기를 인수한 후 1년여만에 이 회사가 퇴출기업으로 선정되어 최소 1900억원의 손해를 입은 사건이다.
김 부원장은 마치 멀쩡한 회사가 국제통화기금(IMF)사태라는 사상초유의 경제위기로 재정사정이 악화된 것처럼 전제했으나, 판결문에 나타난 사실관계에 따르면 당시 이천전기는 부채가 자본을 초과했고 수년 전부터 삼성그룹 계열사가 경영권을 행사했음에도 실적이 호전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법원은 이런 부실 기업을 인수하면서 이사들이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취했어야 할 조치나 절차를 취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김 부원장의 글은 법원의 판결에 대한 중립적인 비판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김 부원장은 재무상태가 나쁜 기업을 인수한 결정에 대해서는 절차를 문제삼아 배상을 명하면서도 그 기업에 지급보증을 행한 부분에 대해서는 절차를 문제삼지 않았다는 점을 들면서 결국 경영판단의 내용에 따라 판결이 달라진 것이라고 단정한다. 실패한 경영판단이라도 무조건 책임을 묻지 않고 구체적인 경위에 따라 달리 취급했다고 긍정적 평가를 할 수도 있으련만 김 부원장은 법원이 경영판단의 내용에 개입하려 한다는 자신의 비판을 정당화하기 위해 판결문의 말꼬리를 잡은 셈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김 부원장이 인용한 외국판결이 완전히 정반대로 잘못 인용되었다는 점이다.
김 부원장은 투자에 대해 어느 정도의 판단을 할 것인지는 경영판단의 중요한 일부라고 하면서 그 근거로 미국법원에서 내린 게티 오일 사건 판결을 들었다.
그러나 이 판결에서는 김 부원장이 인용한 내용을 찾아 볼 수 없고, 오히려 이 판결은 사법부가 경영판단을 적극적으로 심사한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삼성전자 판결이 내려진 후 ‘경영판단의 신성불가침’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음을 보고 놀라게 된다.
이들은 경영진의 판단은 어떤 경위로 이루어졌건 존중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 같지만, 기업 경영진에게 무한의 자유를 주면 이들이 전체 주주들과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만 충실히 임무를 다할 것이라는 생각은 지금까지 경험한 바와는 너무 다르다.
그리고 경영판단은 신성불가침인 양 주장하면서 사법부 판단은 동네북으로 아는 잘못된 경향도 있다.
경영판단의 개입에 신중하자고 주장하려면 사법부의 결정을 비판하는 데에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상훈 변호사·법무법인 한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