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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최 민/세계 문화다양성 선언

입력 | 2002-01-20 18:19:00


“(문화상품과 서비스의 특수성) 문화상품과 서비스는 정체성, 가치 그리고 의미의 매개체로서 단순 생활용품이나 소비자 상품으로 취급돼서는 안되며 특별한 인식이 필요하다.” “(창의성의 촉매로서의 문화정책) 모든 국가는 다양한 문화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고 널리 보급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줘야 하며, 지원이나 적절한 규제 등 각국의 실정에 맞는 방법을 통해 이를 실행해야 한다.” 이것은 지난해 11월2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렸던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된 ‘세계 문화다양성 선언’ 중 제8조와 제9조의 내용이다.

▷파리에 모인 유네스코 164개 회원국들은 미국 주도의 세계화로 인해 위협받고 있는 각 나라, 각 지역의 문화적 고유성과 다양성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해 서문과 12개 항으로 이루어진 이 선언문을 채택했다. 한마디로 문화를 단순한 상품으로 보아서는 절대 안되며 문화다양성을 보호하는 것은 윤리적인 의무이자 또한 인간 존엄성과 관계되는 것임을 천명한 것이다.

▷최근 우리 정부의 한 경제각료는 상반기까지 한미투자협정을 마무리짓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4년간 끌어온 한국과 미국간의 투자협정 체결을 위해 논란이 돼온 스크린쿼터(한국영화의무상영일수)제도 문제 등 민감한 사안처리에 나설 것이라는 소식이다. 미국과의 쌍무투자협정(BIT) 및 자유무역협정(FTA)을 성급하게 추진하는데 스크린쿼터 제도가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고 이를 양보하고자 하는 한국의 몇몇 경제각료들은 이 선언문을 읽고 다시 한번 반성해야 한다. 할리우드의 야만적 공세에 함락 당해 한국영화가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꼴을 보지 않으려면 스크린쿼터제도가 아직은 필수적이다.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보면 왜 미국은 ‘별 것도 아닌’ 한국의 스크린쿼터를 철폐할 것을 그토록 집요하게 요구하며 각종 압력을 한국정부에 넣고 있는 것일까.

▷미국측에서 보면 전세계 영화시장의 독점적 지배와 장악을 유지하기 위한 순전한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겠지만 우리쪽에서 보면 경제적인 이유만이 아니라 문화적 정체성과 직결되어 있다. 우리 문화의 사활이 달린 중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유네스코의 선언은 우리에게 무척 반갑다. 이 선언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국제적 연대기구(문화의 다양성을 위한 새 국제기구·NIICD)의 결성이 준비되고 있다고 하니 크게 기대된다.

최 민 객원논설위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chmin@knu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