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연극영화과 81학번인 나는 대학시절 연출을 전공했다. 당시 1년 선배인 경규형과 절친하게 지냈는데 경규형은 그때부터 웃기는데 단연 최고였다.
연극 연습이 끝나면 경규형은 대한극장 옆 행복예식장으로 후배들을 데려가 적당한 상대(?)를 물색한 뒤 능숙한 말솜씨로 신부측 부모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덕분에 우리는 알지도 사람의 피로연에서 갈비탕을 실컷 얻어먹을 수 있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취업이 막막해진 나는 아는 선배의 주선으로 MBC ‘베스트셀러 극장’에서 연출 보조일을 했다. 주위에서 “외모가 괜찮으니 연기 한 번 해보라”는 권유를 들었지만 “내 꿈은 연출자”라며 사양했다. 그런데 당시 황인뢰PD가 “훌륭한 연출자는 카메라 앞에 서는 느낌과 뒤에 서는 느낌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야 한다”면서 연기가 연출자로 가는 필수과정이라고 설득했다.
나는 1987년 ‘샴푸의 요정’이라는 단막극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작품 속에서 나는 채시라씨를 짝사랑하는 역할이었다.
그 뒤로 심심찮게 섭외가 들어왔지만 순한 외모 때문에 늘 약하고 착한 역할뿐이었다. 한 때 이런 이미지를 바꿔보려 MBC ‘10대 사건 시리즈’에서 흉악범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본격적인 인기를 얻은 것은 93년 MBC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부터다.
당시 서른을 넘겼지만 유난히 어려보이는 얼굴 때문에 성실한 대학생으로 출연했다. 최진실 장동건 이승연씨 등 지금은 스타 반열에 오른 이들과 함께 연기했다.
선량한 이미지 덕분에 당시 본의 아니게 교통법규 위반 딱지를 떼일 위기에 처했을 때 ‘선처’(?)를 받기도 했다. 차를 세우고 창문을 내리면 교통경찰관들이 “아, 그 TV에 나오는 착한 학생이구만” “나보다 형님이네” 등 인사를 건네며 간혹 눈감아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