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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CNN '헤드라인 뉴스' 진행 한국계 여앵커 소피아 최

입력 | 2002-01-24 19:30:00


소피아 최(35)는 지난해 10월부터 미국의 뉴스 전문 케이블 TV방송 CNN에서 ‘헤드라인 뉴스’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는 최초의 미국 주요 방송사 앵커다.

그를 만나기 위해 21일 애틀랜타 CNN 본사를 방문했다. 이국적인 풍모의 그는 부드럽고 세련된 모습이었으나 미 백인 주류사회에서 성공한 전문직 여성 특유의 자신감과 당당함이 넘쳐흘렀다.

대구에서 태어나 8세 때까지 살았던 그의 성 ‘최’는 어머니의 성이다. 어릴 땐 노르웨이인인 아버지의 성을 따 소피아 리처드슨이었다. 12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평소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어머니는 그가 한국인임을 주위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성을 바꿀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최씨의 남편은 독일계 미국인인데, 최씨는 결혼 후에도 미국식으로 남편 성을 따르지 않았다.

-CNN앵커가 돼 꿈의 일부를 이뤘을 텐데, 언론인으로서 궁극적인 목표는….

“미국 언론계에선 3∼5년 단위로 계약이 이뤄진다. 특별히 목표를 세워놓기보다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계약 경신 때 보다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할 뿐이다.”

-저널리스트의 길을 택한 이유는….

“앨라배마주의 초등학교 시절 교내 TV방송에서 학교 뉴스를 전하는 특별활동을 했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어머니의 권유로 미주리대 저널리즘 스쿨로 진로를 정했다.”

-최근 CNN 방송은 앵커 폴라 잔의 섹시함을 홍보했다가 논란을 빚은 바 있는데….

“남녀 앵커 모두에게 외모보다 중요한 것은 좋은 커뮤니케이터가 되는 것이다. 대통령과 거지, 그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고 이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분야에 대해 폭넓은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근무는 어떻게 하나.

“오후 6시부터 3시간 동안 뉴스가 있는 날은 정오부터 준비를 시작한다. 오후 1시 반에 간단한 예고 방송을 내보내고, 프로듀서와 진행에 관해 논의한다. 누구를 생방송으로 인터뷰하는 지를 알아보고 그들의 백그라운드에 관해 미리 공부한다. 4시부터 원고를 보게 된다. 헤드라인 뉴스는 30분 단위로 프로듀서와 원고가 바뀌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존경하는 언론인은….

“여성의 한계를 극복하고 남성 독점 언론계에 입성한 바버라 월터스, 다이앤 소여, 레슬리 스탈 등 선배들이다. 아시안계 최초의 여성 앵커인 코니 정도 존경한다.”

-아시안계 앵커로서의 강점과 약점은….

“백인들과는 다른 시각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일 것이다. 아시안 커뮤니티에 관해선 내가 누구보다도 더 잘 안다. 한국 등 아시아문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를 바탕으로 동료들과 훌륭한 팀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관련 뉴스를 진행할 때의 느낌은….

“객관적이려고 노력하지만 아무래도 특별한 느낌을 갖게 된다. 내가 한국 커뮤니티를 대표한다는 생각도 든다. 그동안 미국 언론엔 한국관련 이슈가 제대로 부각되지 않았다. 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 때도 피해를 본 한국인들이 울거나 총기를 들고 점포를 지키는 광경만 보도됐다. 만약 다음에 그런 일이 있다면 내가 그들을 대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종차별로 힘들지 않았나.

“차별은 한국에서부터 있었다. 한국에선 백인이라고 놀림을 받았고, 미국에선 한국인이라고 놀림을 받았다. 인종차별이 심한 것으로 알려진 앨라배마주에서 전교생이 백인인 사립학교에 다닐 때는 매일 심한 놀림을 당했지만 어머니가 가슴 아플까봐 내색하지 않고 다른 아이들이 말하는 것을 무시하려고 애썼다.”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주고 싶은 말은….

“저널리즘이 요구하는 것의 80%는 스태미나와 인내이다. 노력할수록 더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 때론 사람들이 ‘당신은 할 수 없어’ ‘당신은 안 돼’라고 말해도 노력으로 이겨내야 한다. 예쁜 얼굴은 오래 가지 않는다. 끝없이 인내하고, 매일 열심히 노력해야 꿈을 이룰 수 있다.”

최씨는 어린 시절 떠나 온 한국이 많이 변했을 것이라며 다시 고향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을 격려해 주는 동포들에게 감사한다며 그는 계속 성원해 줄 것을 잊지 않았다.

애틀랜타〓한기흥 특파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