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대표적 지성 피에르 부르디외가 23일 밤 파리의 한 병원에서 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71세.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리오넬 조스팽 총리는 성명을 내고 “프랑스는 가장 재능 있고 저명한 지식인을 잃었다” “그는 프랑스의 위대한 지성이었다”고 애도했다. 르몽드지는 24일 1면 톱기사로 그의 죽음을 전하고 문화면 1개면을 털어 부르디외씨의 삶과 학문세계를 조명했다.
▼항상 사회적 약자편에 서▼
부르디외씨는 사회구조와 사회이론을 비판적으로 연구하는 비판사회학의 거두이면서 평생을 모든 권력에 저항한 행동하는 지식인의 전형이었다. 젊어서는 불평등을 확대 재생산하는 권력에 맞섰고 90년대 들어서는 세계화라는 이름의 또 다른 권력과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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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디외씨는 항상 사회적 약자 편에 섰다. 학교를 통한 엘리트 재생산 과정을 연구해 약자는 태어나면서부터 무능한 게 아니라 사회구조가 부당하게 그의 상승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해 왔다. 60년대 프랑스 사회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고등교육제도에 대한 그의 연구와 비판은 프랑스 68혁명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81년부터 프랑스 지성의 전당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를 지낸 그는 90년대 들어서 노엄 촘스키와 함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반대진영의 대표적인 학자로 나섰다. 그는 “조종하는 기관이 없이 익명의 집단적 존재에 의해 이루어지는 세계화는 조종사 없는 비행기처럼 위험하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지식인의 자기기만 경고▼
그는 권력에 맞서는 반(反)권력으로서의 지식인의 역할을 일관되게 강조했다. 92년 르몽드지와의 인터뷰에서는 “내가 끝까지 지키려는 것은 비판적 지식인의 필요성과 가능성이다. 진정한 비판적 반권력이 없다면 민주주의는 없다”고 역설했다.
르몽드지가 ‘좌파 중의 좌파’라고 평가한 부르디외씨는 2000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작가회의에서 “상업이윤이 지배하도록 만든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기 위해 작가와 예술가, 학자들이 총동원돼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지식인이 빠지기 쉬운 자기기만의 함정을 끊임없이 경계했다. 스스로 “나는 내 안에 있는 지식인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을 정도.
그의 동료인 석학 자크 데리다는 “부르디외는 자신을 포함해 사회의 모든 분야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었다. 최근 들어서는 더욱 급진적이고 고독한 투쟁을 벌였다”며 부르디외씨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