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농구의 대표 슈터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어느 부분을 강조해 ‘슈터’로 분류하느냐 부터 문제다. 지역 방어제를 허용하지 않는 한국 프로농구에서 슈터에 의존하는 팀은 거의 존재하지 않고, 이런 척박한 분위기 속에 살아남은 슈터들도 과거 이충희나 김현준 같은 ‘정통’은 거의 없다. 고심 끝에 3점슛과 미들슛에 능한 선수를 우선 선별했고, 그 중 페넌트레이션과 포스트 업을 주 득점 루트를 삼는 경우는 슈터에서 배제했다.
예를 들어 SK나이츠 서장훈의 경우 미들슛이 정확한 선수지만 골밑에서 올리는 득점이 상대적으로 많아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시즌에 따라 기복이 없는 ‘꾸준한 활약’도 기준에 포함시켰다. 이런 선별과정을 거쳐 LG 조성원, SK빅스 문경은, SK나이츠 조상현, 모비스의 김영만 등이 남았다.
여러 시즌을 뛰며 쌓은 기록이 주가 되었고, 결정적인 순간에 ‘한방’을 넣을 수 있는 ‘특별한 능력’도 염두에 둔 결과다. 우지원도 통계치는 괜찮았지만 찬스에 미덥지 못한 약점 때문에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남은 슈터 조성원, 김영만, 문경은, 조성원 4인방은 모두 소속팀을 리그 정상에 1번 이상씩 등극시킨 남다른 이력도 가지고 있다. 이들에게 대한민국 대표 슈터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조성원 “어떤 상황에서도 슛타임을 만든다”
조성원은 국내 10개 프로 팀 중 유일하게 슈터에 의한 득점을 팀의 제1 공격 옵션으로 삼고 있는 LG의 대표 슈터다. 국내 슈터 중 마크맨이 붙은 상황에서도 제 역할을 가장 잘 해내는 것이 조성원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어느 위치, 어떤 자세에서 패스을 받아도 슛까지 연결시킬 수 있는 능력 때문이다.
슛을 쏠지 말지의 망설임 없이 패스를 받으면 마크맨이 따라 붙을 틈을 주지 않고 노타임으로 뛰어 오르는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다. 이런 빠른 타이밍의 슈팅은 성공 여부에 관계없이 상대에게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거기에 동료의 스크린을 이용해 빈자리를 찾아가는 능력도 탁월하고, 1대1 상황에서 그대로 뛰어 올라 던지는 중장거리도 정확하다.
슈터는 본인이 찬스를 만들면서 던지는 스타일과 노마크에서 받아먹는 스타일로 나눌 수 있는데 6,70년대 한국 최고의 슈터였던 신동파씨는 ‘후자는 슈터라고 할 수 없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빈 공간에서 노마크 찬스를 만드는 것도 능력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이 찬스를 찾아내는 능력과 1대1도 능한 조성원을 한국 슈터 계보를 잇고 있는 ‘정통 슈터’ 중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김영만 “가장 정확한 중장거리 슈터”
사실 김영만을 통상적으로 말하는 슈터라고 보기엔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페넌트레이션과 속공에 의한 골밑 득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영만은 프로 원년부터 5시즌 계속 뛰면서 그 기간 동안 같이 활약한 문경은과 조성원에 비해 3점슛 시도 횟수가 절반 정도이다. 반면 게임당 득점은 비슷한 수준이어서 외곽포 보다는 확률 높은 공격을 많이 시도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김영만을 현재 프로 농구 대표 슈터 중의 하나로 꼽은 것은 그가 뛰어난 중장거리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저버리기 힘들어서였다.
결국 다양한 공격 루트를 가지고 있어서 굳이 외곽에 의존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얘기다. 단순히 기록상에 나타난 많지 않은 3점슛 시도 횟수를 제외하고, 간단하게 중장거리 능력만 평가한다면 그는 뛰어난 슈터임에 틀림없다.
마크맨을 어깨로 한 두번 툭툭 건드려 공간을 만든 다음 던지는 런닝점프 슛, 장신 수비수를 앞에 두고 던지는 터닝페이드어웨이 슛과 같은 다양한 기술, 그리고 빠른 슈팅 타이밍 등 슈터의 조건들을 고루 갖추고 있다. 거기에 팀이 원하는 순간에 한방 터뜨려 주는 클러치 능력도 그가 뛰어난 슈터라는 평가를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확신을 갖게 만든다.
▽문경은 “거의 유일하게 남은 정통 슈터”
문경은은 3점슛이 가장 정확한 슈터다. 득점이 고르지 못한 탓에 그의 능력을 폄하하는 말들도 많지만 4시즌 동안 1,200회가 넘는 많은 3점슛을 던지면서 거둔 42.4%의 성공률은 놀라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슛 넣는 재주만큼은 타고난 선수라는 얘기다.
문경은은 전체적으로 빠르지 않지만 슛을 쏠 때 스피드는 좋다. 거기에 점프력도 괜찮은 편이고, 특히 팔로스로우가 뛰어나다. 그의 훌륭한 팔 동작은 볼의 비거리를 늘렸고, 궤적이 낮다는 지적도 무색하게 만들었다.
문경은의 강점은 ‘대담함’이다. 장거리포가 들어가지 않으면, 페네트레이션이나 골밑 근처에서 할 수 있는 다른 공격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직 외곽 찬스만 노린다.
이를테면 속공 찬스도 3점으로 마무리는 스타일이다. 굳이 기록을 확인하진 않았지만 출전시간 대비한 레이업슛 빈도가 제일 적은 선수일 것이다. 무모하다 싶을 정도지만 기대만큼 터지는 날에는 어김없이 승수를 챙겨주니 ‘스타일 변화’를 강요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물론 ‘안전함’을 원하는 감독에겐 약점으로 지적 받을 수 있다. 상대의 밀착마크에는 힘을 못쓰는 것도 이런 외곽포를 고집하는 스타일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지적들이 문경은의 장점을 모두 희석시키지는 못한다. 아마와 프로를 이어오며 거의 유일하게 남은 ‘정통 슈터’로 나름대로 제 영역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상현 “최대의 장점은 안정감”
조상현도 김영만과 같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전형적인 슈터’와는 좀 다르다. 레이업 등 골밑 득점이 상대적으로 많고, 3점포는 좋지만 미들슛은 극단적으로 자제하는 스타일이다.
말하자면 외곽에서 패스를 받아 오가다가 ‘상대가 붙으면 골밑을 뚫고, 떨어지면 던진다’를 시종일관 실천하는 선수다. 외곽과 골밑 공격을 확실하게 구분할 줄 아는 선수라는 말도 될 것이다.
조상현은 ‘정통 슈터’도 아니고, 이제 프로 3년차에 불과해 앞에 열거한 쟁쟁한 선배들과 비교하기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확실히 다른 슈터들이 보여주는 다이나믹한 맛은 떨어진다. 힘든 동작에서 3점포를 터뜨리거나 3점슛 서너방으로 역전을 만드는 ‘기막힌 장면’ 등은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조상현은 자신만의 장점을 가지고 있는 슈터다. 4쿼터 말미 2,3점 뒤지고 있을 때 SK 최인선 감독은 조상현에게 마지막 슛을 요구한다. 그의 안정감 있는 슛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슈팅 타이밍은 빠르지 않지만, 반대로 성급한 공격을 자제할 줄 알고 성공률도 높다. 오픈 찬스를 만들어 주었을 때 확실하게 넣어주는 능력은 아마 조상현 만한 선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꾸준한 득점도 그의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한 쿼터에 3,4개 몰아넣고 마크맨이 붙은 다음 쿼터는 무득점에 그치는 식의 플레이가 적으며, 프로 데뷔 이후 정규리그에서 한 경기도 결장한 적이 없다. 이렇게 다른 슈터들에겐 없는 ‘안정감’이 조상현 최대의 장점인 셈이다.
최국태 기자gen69@jumpba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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