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작을 크게 하세요. 수줍어하지 말고 팔을 힘차게 흔들어보세요.”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피트니스 클럽. 미국계 산업 자동화 서비스 기업인 로크웰오토메이션사의 톰 오라일리 사장과 직원 10여명이 스포츠댄스를 배우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들은 로크웰사의 댄스 클럽 회원. 이 회사내에 구성된 낚시 골프 테니스 볼링 클럽과 함께 5개 ‘취미 클럽’ 중 하나다.
‘취미 클럽’은 오라일리 사장이 2년전 한국에 부임하면서 사원의 건강을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 10명 이상이 모여 만든 클럽에 가입한 직원에게는 연간 1인당 30만원의 지원금이 주어진다.
직원들은 매년 한 차례씩 받는 정기 건강검진에서 직원뿐만 아니라 배우자에 대한 검진 비용도 회사에서 부담하고 있다며 사내 건강 프로그램에 대만족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 때문에 로크웰사 직원의 연간 이직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운 수준.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최고경영자가 직원의 건강을 직접 챙기는 회사가 점차 늘고 있다. 회사 내에 스포츠센터를 마련하거나 건강 동호회에 지원금을 주는 등 물심양면의 후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는 ‘최고건강관리자’(CHO·Chief Healthcare Officer) 역할도 해야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사(GSK)의 직원들은 매일 오전 10시와 오후 3시 ‘섬(Island)’으로 간다. 섬은 사내 중앙에 투명한 유리로 둘러싸인 휴게실을 가리키는 말. 김진호 사장이 올해부터 휴게실에 싱싱한 과일을 준비하도록 지시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제약사의 CEO답게 과일을 통한 비타민 등 영양 섭취로 직원의 건강을 챙기는데 관심이 많다.
토종 기업의 CEO도 직원의 건강에 점차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KTF의 이용경 사장은 사원의 체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번지점프와 래프팅, 산악 오리엔티어링 등을 즐길 수 있는 ‘스포츠 챌린지’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했다. 회사내 전속 간호사가 있으며 수준급의 피트니스 센터를 운영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상에 대해 CEO가 직원의 건강과 관련된 각종 지원을 비용이 아닌 미래를 위한 투자로 인식한 결과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라고 진단한다. 평소 함께 운동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일체감을 다지면 업무 효율도 올라가고 생산성이 향상된다는 것.
실제로 삼성코닝 구미, 수원공장에서 99년부터 CEO가 주도해 시작된 금연 캠페인을 실시한 결과 3년 뒤 사원의 유병률이 6.5%에서 5.8%로 떨어졌고 사원의 체력 연령이 4.5세 낮아질 만큼 건강이 좋아졌다. 체력 연령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근력 심폐력 유연성 등 9가지 기초 체력 측정을 바탕으로 평가하는 건강 나이. 이 회사 관계자는 “금연 운동이 생산성으로 이어지는 효과를 정확히 계산해내기는 어렵지만 직원의 건강이 생산성 향상의 요인이라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오라일리 사장은“직원이나 직원의 가족이 건강하지 않으면 인력 운용과 업무 효율이 떨어지기 마련”이라며 “미국 등 각국의 CEO들은 최근들어 부쩍 직원의 건강과 스트레스 관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美-유럽 기업 유머훈련 도입 '건강경영' 인기
‘건강경영이 일의 효율을 높인다.’ 사내 직원을 대상으로 한 유머 훈련 등 건강경영 프로그램이 미국과 유럽의 기업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고용자들의 건강 관리 및 보험 상담을 대행해주는 미국 시카고의 컴사이크(ComPsych)사는 지난해 9·11 테러사건 이후 서비스를 요청하는 건수가 평소에 비해 1000% 증가했다고 최근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밝혔다.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CEO) 리처드 사이페츠는 “이같은 현상은 기업이 직원의 스트레스 및 건강 관리가 무엇보다 소중한 자원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또 미국에서 직원을 대상으로 유머 훈련 등을 대행하는 유머프로젝트(humorproject)사는 이미 몬샌토, 듀폰, 코닥 등 유수의 기업을 고객으로 끌어들여 고용주에게는 유머경영, 고용자에게는 유머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IBM 역시 매년 뉴욕에서 열리는 중역회의 때 유머 컨설턴트를 초청해 강연을 듣는 등 웃음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다임러 크라이슬러 등 유럽의 기업들도 건강경영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독일의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은 “미국에서 90년대부터 붐이 일기 시작한 유머경영이 유럽에서도 새로운 경영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차지완 기자 marud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