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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가 블랙박스]인기곡 모두 녹음한 '편집음반' 유행

입력 | 2002-01-28 17:56:00


사춘기 시절의 아련한 추억 중 하나는 밤만 되면 라디오나 워크맨을 통해 흘러나오는 팝송과 가요를 들으며 하얗게 밤을 지새우곤 했던 기억일 것이다. 꼭 듣고 싶은 노래가 있으면 방송국에 신청 엽서를 보내기도 했는데 워낙 경쟁률이 높아 원하는 노래를 원하는 시간에 듣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래서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택한 방법이 동네 레코드 가게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저작권법이 자리잡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 레코드 가게에서 손님이 원하는 노래만을 골라 테이프를 만들어 주는 게 관례였다. 애써 레코드를 만든 음반 제작자 입장에서는 소비자들이 각 음반에서 좋은 곡만 뽑아서 테이프 하나에 몽땅 녹음해 들으니 울화통이 터질 일이었겠지만 당시에는 이를 불법인줄 알면서도 묵인해줬다.

가끔씩 창고를 정리하다가 예전에 녹음해왔던 테이프를 발견할 때가 있는데 그 곡목을 살펴보면 당시 최고의 히트곡이 총 망라돼 있다. 스스로 뽑은 ‘가요 톱 텐’에서부터 당시 나이트 클럽에서 유행했던 음악 모음까지 낡은 테이프 케이스에는 동네 레코드 가게 아저씨가 써준 수록곡이 적혀있다.

저작권법이 확립돼 있는 요즘 이런 행위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약 레코드 가게에서 불법 녹음을 해줬다가는 형사 처벌을 당할 것이며, 컴퓨터에 익숙한 청소년들은 인터넷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MP3로 다운받기 때문에 굳이 레코드 가게에 부탁할 일이 없다. 또 이제는 수많은 편집 음반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 좋은 곡들만 모아놓은 ‘정품’이 나오고 있는 셈이다.

대박 편집 음반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연가’는 200만장에 육박하는 판매고를 올렸고 1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팔리고 있다. 그 이후 나온 비슷한 컨셉트의 편집 음반들도 나름대로 재미를 봤다는데 특히 편집 음반의 경우 음반 자켓 모델이 누구냐에 따라 성패가 가려지곤 한다.

이미연을 내세운 ‘연가’의 히트에 이어 이영애를 내세운 ‘애수’가 인기를 얻었고 유오성 장동건 정준호 원빈 구본승 등 ‘남자 배우 드림팀’을 용케 섭외한 ‘동감’은 광고 사진만으로도 히트가 예견되곤 했다. 그 이후에도 김남주 김석훈 장진영 이미숙 손예진등 많은 스타들이 편집 음반의 모델로 나섰고 지금도 또 다른 편집 앨범들이 기획, 제작 중에 있다.

그 중에서도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첫사랑’이라는 편집 음반은 패티김 양희은 김추자 전영록 등 70, 80년대 인기가수들의 히트곡이 주를 이루고 있어 장년층들이 주 고객이라고 한다. 컴퓨터에서 MP3로 다운받을 줄도 모르고, 길거리에서 파는 불법 테이프들은 최신 곡들만을 모아놓아 아는 노래가 없고, 옛날 음반을 사자니 찾는 음반이 없는 경우가 많고….이래저래 원하는 음악을 구하지 못하던 장년층의 고민을 ‘첫사랑’이 한번에 해결해주었다는 것이다.

편집 음반이 많이 나가면 정규 앨범이 안 팔린다는 것이 음반 업계의 정설로 돼 있고 이 때문에 음반 제작자들이 모여서 편집 음반을 만들지 말자고 결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당시 결의했던 제작자들이 지금도 앞을 다투며 음원을 확보하고 광고를 하며 편집음반을 만들고 있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음반 업계가 위기감을 느끼면서도 MP3의 보급을 막지 못하고 있듯 당분간 편집 음반의 범람을 막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소비자의 입장에선 한편으론 필요하기도 한 편집음반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전체 음반 시장이 위축될까봐 걱정이 된다.

시나리오 작가 nkjaka@hanmail.net